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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지독한 재물 사랑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중국 청나라의 오경재가 지은 풍자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인간의 재물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엄강생이란 인물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엄 씨는 드러나지 않는 부호였다. 천성적으로 인색했던 그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데만 지독히 몰두했다. 죽음에 다다른 엄 씨. 가래가 끓어 숨을 그르렁거리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숨만큼은 왠지 쉬이 끊어지지 않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 씨가 홑이불 속에서 손을 꺼내서는 손가락 두 개를 꼿꼿이 세우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집안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하며 이유를 물었다. “꼭 보고 싶은 친구 두 분이 계신가요?” 엄 씨는 고개를 흔들어 아니라 했다. “혹시 은자 두 냥이라도 숨겨 놓으신 건가요?” 아니었다. “친척 중에 누가 오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말을 못하는 엄 씨는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한 참 후 그의 아내인 조씨가 남편의 뜻을 알았는지 눈물을 닦으며 사람들을 물리치고서는 다가가 말했다. “이제 당신 뜻을 알 것 같군요. 등잔 안에 심지가 두 개라는 뜻이지요? 한 개면 될 것을 두 개나 넣어 낭비라는 뜻이지요? 이제 안심 하세요.” 임종의 남편이 보는 앞에서 등잔의 심지 하나를 뽑아내는 부인. 손가락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엄 씨는 숨을 거두었다.

난,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인간의 재물에 대한 집착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전노’는 인색한 사람을 뜻한다. ‘검약(儉約)’이 지나치면 이렇게 된다. 수전노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명대 진문촉의 『천중기(天中記)』도 있다하듯이, 임종 순간까지 재물을 아끼려는 엄 씨가 측은하기도 하고, 일면 그의 집념이 부싯돌에 불꽃 튀듯 정신을 번쩍 들게도 한다.

근대라는 역사적 구분 개념은 서구적인 것으로 중세 천년을 지나 르네상스(15세기) 이후를 말한다. 특히 합리주의에 입각한 과학혁명(17세기)은 인간 이성을 기반으로 한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 여부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논리나 실험적 근거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어 시민혁명(18세기)은 민주주의라는 사회법질서의 틀을 만들어냈고, 이런 역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산업혁명에 이은 제국 패권주의의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런 단계를 밟을 기회가 없어 위정자에 따라 불안요소가 증폭되기도 한다.

근대이후로 인간 정신을 지배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절대다수의 절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公理主義)’이다. 처음에는 법치의 개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에 대한 인간 욕구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불교가 가져야할 앞으로의 고민은 앞의 엄 씨와 같은 인간의 재물의 소유정도를 행복과 동일시하는 흐름을 어떻게 하면 보다 긍정적으로 봐줄 수 있느냐의 여부, 그리고 합리적 종단 운영능력문제이다. 종교집단에 어울리지 않게 선거로 모든 운영주체를 뽑고 있는 현실이 유감스럽지만 이것이라도 성숙하게 치러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디언중의 한 부족은 늑대에 대한 교훈을 가지고 있다. 늑대라는 동물은 필사적으로 달아날 때에도 자기 굴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또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날이 시원해 살만하다 싶으니 모기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침은 또 얼마나 따가운지. 아무튼 지금은 모두에게 좋은 계절!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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