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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19. 헤르만 헤세-이인웅 한국외대 명예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기독교·불교·도교 조화롭게 합일된 새 종교 추구

기독교 교파적 이단 행태에 갈등
사람은 윤회 통해 새 존재로 거듭
“명상으로  내면의 神性 도달해야”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194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유럽지성의 한 사람이다. 현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사부(師父)’로 잘 알려진 그는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명상하며 요가를 실행하기도 하고, 자주 불교적 정신집중이나 무아(無我)로의 침잠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런 행공을 통해 내면으로의 길을 가고 진정한 자아에 머물면서, 실제체험과 직관적 통찰과 불교적 명상을 문학화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불교도’라 부르곤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대표 지성

혈통적으로 헤세는 경건주의와 이국(異國)적 요소로 충만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독일인으로서 러시아국적을 소유하고 에스토니아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할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며, 여기에서 인도로 건너가 선교사 생활을 한 후 독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선교사이며 저명한 인도어문학자의 딸로 동(東)인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교양 높은 양친의 집에서 헤세는 어릴 때부터 『성경』 이외에 ‘불경’과 ‘노자’를 알고, 옷장·상자·유리그릇·옷감·우상(偶像) 등 수많은 동양문화재로 둘러싸여 성장한다.

그러나 집안의 종교적 분위기는 경건주의 특성을 지닌 개신교이다. 부모님의 삶은 철두철미 신(神)의 나라로 규정되고, 신의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신으로부터 빌려온 것으로 간주하고, 일생을 신에 대한 봉사와 희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헤세는 자연히 기독교신앙을 접하며, 그도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한다. 처음에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생활에 적응하지만, 7개월이 지나면서 교회와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결국은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신학교를 탈출한다.

일찍부터 그는 신앙적 삶과 교회교리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체험한다. 종교적 체험과 교회의 형식적 요소 사이에 갈등을 느끼고, 기독교의 교파적이고 이단적인 형태를 참지 못한다. 외조부모와 부모님이 인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면서도, 예수의 가르침만이 유일하게 신적이라는 교리를 걸림돌로 여긴다는 점도 간파한다. 그래서 헤세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종교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헤세가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기독교는 설교나 교리보다도 종교적 체험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신앙은 양극성 너머의 단일성을 설파하는 동양적 믿음과 상통한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동양정신으로 눈을 돌린다. 먼저 신지학(神知學) 논문들을 알게 되고, 동방여행을 하고, 수많은 동양의 지혜와 사상을 독서한다. 인도의 고전으로 독일어로 번역이 된 『바가바드기타』, 『힌두교』, 『부처의 설법』, 『우파니샤드』 등에 심취하고, 베단타철학과 상키아철학에 몰두한다.

나아가서 중국의 지혜로서 『벽암록』을 비롯한 선어록과 『시경』과 『논어』와 『맹자』 『열자』와 『여씨춘추』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남화경』 등을 탐독하고 서평을 쓴다. 이를 통해 ‘우주의 전체성’과 ‘모든 삶의 단일성’을 예감하게 되고, 현상계를 초월한 순수한 존재에 대한 초월적 견해에 도달하여 전일(全一)사상을 투시한다. 헤세는 만유의 단일성을 굳게 믿으며, 언제나 다시 이 단일성 속에 침잠한다. 그의 내면에는 신앙심 깊은 경건주의와 불타는 인도정신 그리고 고대 중국현인들의 중용을 따르는 지혜가 서로 공존한다.

헤세는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하나의 책을 쓰려고 했는데, 그것은 『싯다르타』라고 한다. 여기에는 보통 ‘신비적’이라고 말하는 불교적 내지 도교적 교훈이 깃들어있다.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이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깨달음과 믿음의 방법은 아주 불교적이다.

그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사물의 상들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파악하고, 순간에서 영원을 투시하고, 우주만유와 하나가 되고자 한다. 동양적 종교성의 전일사상을 예고하며, 저 세상에 대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언제나 현세의 삶에 충실하고, 바로 이세상의 삶에서 계시와 믿음을 체득하고자 한다. 마침내는 자기 내면에 깃든 자아(自我)를 찾는 목적에 도달한다.

힌두·불교·노장사상에 심취

죽은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사상을 수용함에 있어서 헤세는 불교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란 죽음을 통하여 하나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지 결코 사멸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윤회 속에서 영원히 변화하며 언제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생명의 죽음이란 절대적인 존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다른 존재로의 새로운 시작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주인공 크네히트의 영혼은 역사이전 시대로부터 25세기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 윤회하며 인간형상으로 현현한다. 즉 수천 년 전 선사시대의 기우사, 기원 후 4세기의 고해신부, 18세기의 목회자이며 오르간연주자, 인도적 시간의 초월 속에 환생한 요가수도자, 그리고 25세기에 중국적 유희의 명인으로 태어나는 크네히트가 그것이다.

그의 영혼이 계속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지, 아니면 윤회로부터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헤세는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고목표인 열반에 대해서 언급한다. 해탈을 하기 위한 수행과정으로서의 참선과 명상을 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내면으로의 길을 가며 자기 내면의 신성(神性)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깊은 명상에 침잠하여 시간과 의식을 초월한 열반 상태를 ‘행복’이라고 하며, 성불(成佛)하여 열반에 이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부처님의 미소를 서술한다.

의식 초월한 열반 상태가 행복

불교신앙보다는 늦게 헤세는 중국의 정신세계를 알게 되고, 『도덕경』과 『남화경』에 몰두한다. 그리고 선불교 요소와 더불어 도교사상을 철학적 종교적 의미로 수용한다. 그러므로 후기의 사상적 논술이나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서한집에 도(道)라는 개념이 자주 사용된다. 또한 『동방순례』의 회원들은 사적으로 정해진 이상스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동방으로 여행을 떠난다.

화자인 동시에 동방순례자인 H(ermann) H(esse)는 근본적으로 ‘보물 찾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직 고귀한 보물인 ‘도’와 ‘도교적 이상’을 찾아 얻는 것이 최상의 목표이다. 노년의 헤세가 가는 길도 바로 이러한 목적을 향하고 있다.

헤세는 도를 시바, 비슈누, 생(生), 브라마, 아트만, 영원의 어머니, 신 등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한다. 노자의 도와 불교의 열반이 다르지 않다 하고, 도 개념을 기독교적 신의 나라와 동일시하며, 우주만유의 절대적 단일성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도의 본질을 깨닫고 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선불교적인 ‘내면으로의 길’을 설파한다. 또한 그는 중국인의 도를 인도인의 아트만, 기독교인의 은총과 동일시하면서, 도를 깨닫는 것은 우리 내면에 깃들어있는 만유를 조화로이 합일시키는 비밀스런 신성에 대한 최고의 인식이라고 말한다.

헤세의 교육과 신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즉 모든 존재에 대한 근본사상이란 진솔한 가정생활과 내면적 종교와 철학, 그리고 동양적 지혜에서 솟아난 믿음이다. 85년이란 세월을 고민하며 방황하던 인간 헤세가 마지막 단계에서 깨달은 믿음이란, 그들 요소가 서로 배제하지 않고 상호 보충역할을 하는 양극사상과 전(全) 조화적 존재의 단일성이다. 다시 말하면 양극적 또는 대립적 전일사상이다.

기독교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다시 도교정신으로 방황하는 작가가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이 대립적 전일사상에 독자가 찬성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헤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삶에 대한 근본문제를 지속적으로 생각하며 “이 삶의 양극을 서로 구부려주고, 인생 멜로디의 두 가지 소리를 글로 표현하려는” 시적 시도를 피가 나도록 계속할 따름이다. 이러한 전일적 신앙이란 기독교와 불교와 도교가 서로 교차하며 조화롭게 합일한 새로운 종교로서, 독일의 중국학자 그로트가 유불선도(儒彿禪道)를 통합하여 ‘우주주의’라고 한 동양의 종교성과 다르지 않다.
 
이인웅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인웅 교수는

한국외대를 거쳐 뮌헨대학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헤세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교수로 재직하며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외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현대독일문학비평』, 『헤세와 동양의 지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헤세의 『데미안』, 『禪. 나의 신앙』, 『인도여행』,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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