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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재 발심

기자명 법보신문

앞마당 산벗나무는 벌써 낙엽을 떨구고 온통 적멸을 드러내고 있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밥값을 계산해 보게 되는데 저마다 무게가 다를 것이다. 더구나 오십 고개를 넘어가면 더욱 초조해지고 막막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남들에게는 흔한 외국 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죽도록 정진을 했지만 아직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후배스님이 찾아와서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다.

막내로 태어나서 많은 형제자매들을 믿고 출가를 했지만 막상 어머니가 큰 병에 들어 누웠다가 돌아가시니 누구 하나 정성스런 마음을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선의 이치에는 밝아서 아는 것이 많았지만 큰일을 당하고 나니 아무 힘이 되지 못하고 원망이 쌓이니 후회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친이 다시 한 번 발심하라고 무상을 보여준 것이니 참으로 귀한 시절인연을 놓쳐 후회하지 말라고 며칠을 두고 탁마를 했다.

이제부터 아는 것을 모조리 소각해 버리고 참으로 알 수 없는 활구를 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공부의 선근이 많아서 바로 활로를 열어 가는 것을 보고 정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그 동안 이치로는 아는 소리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병이 되어 자기 성격하나도 다스리지 못하고 큰일을 당하면 어리둥절하게 되니 자기를 속이지 못한 것이다. 만약 법상에 집착하여 실천을 하지 않으면 참으로 자비심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모처럼 신심을 내는 사람들마저 법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게 만드는 죄를 짓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아는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오직 모르는 것이 성품의 덕이어서 더욱 겸손해지고 모든 부모를 자신의 부모로 모셔야 하는 출가자의 본분을 확인하여 오히려 자비심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황벽선사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출가를 했지만 아들을 잊지 못하여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어머니가 눈이 짓물러서 멀어 버렸다. 하지만 오직 자식을 한 번 보고 싶다는 모정을 끊지 못하고 강가에 초막을 지어놓고 지나가던 스님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어느 날 황벽스님은 이러한 기막힌 광경을 보고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애착을 벗어나게 하려고 냉정하게 배를 타고 떠나버리니 끝까지 쫓아오다가 차가운 강물에 그만 빠져서 얼어 죽었다. 참으로 수행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보통 사람들은 인정에 끄달려서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황벽선사처럼 어머니를 제도하려는 깊은 마음을 실천해 옮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아픈 마음을 수행의 한으로 삼아서 끝없이 발심을 일으켜 끝내 공부를 마친 선사는 어머니를 제도하고 임제라는 걸출한 제자를 두어 임제 가풍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스님을 자식으로 둔 어머니의 마음은 이왕 출가했으면 반드시 성불해서 목련존자처럼 자신을 구제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금생에 사람 몸을 받아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생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 출가 할 때는 비장한 마음을 내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무디어 지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부모의 원을 배반하는 것이니 다시 한 번 점검하여 재 발심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리산에서 수행하는 도반스님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사십구재 동안 이루지 못한 공부를 성취하여 당당하게 한마디를 일러드리고 못 다한 부모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서 모두가 지금 서 있는 발밑을 바로 돌이켜 홀로 천왕봉에 우뚝 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옛길에 들국화 더욱 한가롭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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