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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20.사고방식의 혁명

기자명 법보신문

계는 모든 존재를 존중해야한다는 가르침
수행은 소유론적 사고방식을 해체하는 것

불교적 수행이 도덕윤리적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렵겠다. 한국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유교의 도덕윤리주의의 영향으로 세뇌되어 왔었기에 존재론적 사유에는 빈곤하고 도덕주의적 명분에는 대단히 강하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도적주의적 명분과 도덕적 행동성향은 다르다. 그러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계율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 일어난다. 부처님이 삼학(三學) 가운데 계(戒)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되든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또는 자연적으로 다른 존재를 괴롭히는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계가 도덕윤리적 차원의 형식적 덕목의 준수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깊이를 더 중시하는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원효대사와 경허대사는 이미 승려가 아니겠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도덕윤리적 차원의 주장은 자신의 도덕윤리의 정도를 성찰하는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심판하고 남들을 매도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불교는 그런 심판주의나 도덕윤리주의의 가르침이 아니다. 불교의 수행은 인류가 습관적으로 시행해 온 소유론적 사고방식의 틀을 해체시키고,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대체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차원이다. 불교는 선을 소유하고 악을 배척하자고 외쳐대는 도덕론의 형태가 아니다. 불교는 사회생활에서 소유론적 사고방식 대신에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대체할 것을 가르치는 그런 요구다.

즉 부처되는 길은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은 유교적 도덕윤리주의가 갈아 놓은 업보로 그런 잔재가 심하게 남아서 존재론적 사고가 빈약한 문화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존재론적 사고가 짙은 노장사상이 한국에서 거의 부재하고, 공맹사상도 도덕교조적으로만 두텁게 깔린 경향이 난무하였다.

불교는 공맹의 도처럼 그런 도덕윤리주의의 선지상 주의가 아니다. 선지상주의는 겉으로 대단히 도덕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선적 도덕의 허식을 초래한다. 동양사상에서 노장사상이 존재론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공맹의 도덕주의의 선만들기 작업의 헛된 노력에 대한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휴식의 의미만을 챙기는 소극적 결과로 만족했다.

불교는 지말적으로 행동양식을 겨냥하기보다 오히려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을 겨냥하는 종교다. 부처님의 사고방식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대승불교를 돈교(頓敎)라고 부르는 것은 일리가 있다. 불교는 일종의 사고방식의 혁명을 겨냥하는 종교로서 소유론적 사고방식에 찌든 세속을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사회생활을 통하여 익히도록 길을 안내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세상에 몸을 갖고 태어난 이상 세속적 소유론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교의 위대한 가르침은 세속적 사회생활에서도 존재론적 사고방식으로서 소유론적 사고방식을 대체하여 이른바 존재론적 삶이 소유론적 삶보다 더 복락스럽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능케 해주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지혜에 있다 하겠다.

불교는 어디에도 맹목적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신앙이나 종교가 아니다. 불교도 믿음을 말하지만, 그것은 교주의 가르침에 대한 고요하고 깊은 신뢰를 뜻하지 열광적 광기가 아니다. 불교는 사고방식의 혁명을 요구한다. 소유의식의 사고방식을 공동존재가 다 바라는 마음으로 생각의 축을 돌리자.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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