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심청심] 온실을 정리하며

기자명 법보신문

계절이 바뀌는,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우리 절에서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온실 정리가 그것이다. 하절기에 나가있던 화초를 온실에 들여놓고 이중으로 씌운 비닐을 손질하는 작업이다. 올해는 손 도르래를 이용해 감아 펴는 개폐식으로 지붕을 바꿔 다느라 하우스 전체를 새 단장했기 때문에 일이 많이 커졌다. 그래도 이런 일은 화초 가꾸기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막노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람들은 야생화를 막 다뤄도 되는 걸로 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산에 들에 자라는 풀을 떠올려서도 그렇겠지만, 품에 키우는 관상용은 많은 손이 가야한다. 야생화는 실내에 놓으면 하루 만에 생기를 잃기 시작하고, 혹 여러 날 방치라도 한다면 이 여린 풀에게 올 치명적인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 자연적 환경이 무엇이겠는가. 바람과 햇살을 항상 몸에 붙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를 넘기지 않고 실내의 화분을 밖에 내놓는 정성을 보여야 화초는 비로소 앙증맞다 싶게 사랑스러운 꽃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지난 장마 전에 장독대와 청소도구함이 차지하고 있던 철제 박스와 시멘트 바닥을 걷어내고 얻어낸 두어 평 남짓한 자리에 이름표까지 붙여 심었던 화초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선 이 공간이 무한 사랑스러운 것은 “우표크기만한 땅이라도 정원을 가꾸라”하는 말을 실천했다는 자부심이고, 모르던 화초를 몇 개 더 알게 된 즐거움도 있다.

생각해보라. 벨가못, 스로케시아, 범부채, 당귀, 후록스, 리아트리스, 솔리다고…. 이 정원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아기별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열거한 이 풀들은 “염라대왕이 쓰는 화로의 부젓가락 노릇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깊은 뿌리를 내리는 쇠뜨기 정도의 위인도 못된다.

오히려 지난여름에 세찬 비바람 한번 맞았다고 죄다 뿌리를 드러내며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아 날 걱정시키던 이 연약한 풀들인데, 이제 하나같이 눈물겹게 씨앗을 품었다. 대기 중에서 가장 많은 원소는 약 8할을 차지하는 질소라 한다. 질소는 아미노산이나 단백질의 원료가 되는 중요한 원소다. 이 풍부한 질소라 해도 대기 중에서 끌어내어 자유롭게 쓰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는데,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수가 적더라도 크기가 큰 씨앗이냐, 작지만 수가 많은 씨앗이냐, 짝 없이도 씨앗을 남기는 자가수분이냐,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종자를 남길 수 있는 타가수분이냐가 모든 식물이 안고 있는 문제다. 씨앗을 퍼트리는 것도 가지가지다. 40km를 날아가는 민들레처럼 바람을 이용하는 것,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가죽 털에 붙어 이동하는 것, 그냥 제자리에 떨어져 군락을 이루고 사는 것도 있고, 사과 같은 열매는 동물의 뱃속에 담겨 이동한다. 과육의 맛이란 게 사실은 그 씨앗이 가진 마음이요, 한 편으론 유혹이고, 사랑이다. 과일을 본성에 맞게 먹으려면 씨까지 먹고 산이나 들에 가서 볼일을 봐야한다. 그게 사과의 마음이니까!

난, 티베트의 나라 잃은 설움이 오히려 오늘날 세계 곳곳에 퍼져 불교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음을 풀들의 전략과 연계해서 받아들인다. 그곳이 어디건 당신을 부르면 마다않고 찾아가시는 달라이라마 성하가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한국불교 당면의 ‘대중교화’는 불교존립의 문제로, 자기 안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겁쟁이다. 귀찮게 생각하는 이가 있을까 저어해서 해본 소리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