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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불편한 기억

기자명 법보신문

이솝 우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뱀 한 마리가 농부의 아들을 물어 죽였다. 분노에 격해진 농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도끼를 집어 들고 뱀 입구를 단단히 지켰는데, 뱀이 나오면 그 즉시 내리칠 속셈이었다. 마침내 뱀이 굴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순간 농부는 있는 힘을 다해 도끼를 내리쳤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인지 도끼가 빗나가면서 뱀을 죽이지는 못하고 굴 앞의 바위만 두 동강을 내는데 그쳤다. 굴을 빠져나온 뱀이 째려보자 농부는 뱀의 독기가 무서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린 농부가 뱀을 달래보려 했으나 뱀은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

“난 저 바위에 난 무시무시한 도끼 자국을 볼 때마다 자네 생각을 할 것이고, 자네 역시 자식의 무덤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날 테니까.”

이런 경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해서 경전 공부 시간에 의견들을 물었더니, 대략은 원한을 되 물림하느냐 아니면 화해하느냐의 두 가지로들 말했다. 원한은 용서 받기 어렵고 상대 또한 삶을 도모하는 일념뿐인데, 어떻게 화해를 모색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런 미움과 원망 속에서도 마주치며 살아야하는 애꿎은 삶의 일면이 유감스럽다면 유감스러울까?

그래서 경전에서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원함을 그치는 것이 갚는 길이다”라고 하며, 특히 입으로 짓는 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 이유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가장 쉬우니까 가장 많이 범하는 데서 비롯된다. 경전을 독송할 때 입을 맑히는 ‘ 정 구업 진언’부터 하는 것도 다 이런 의미가 있어서이다.

공자께서 후직(后稷)을 모신 묘당에 들어갔는데, 거기 놓인 청동상은 입을 세 번 꿰맸고 등에는 ‘말을 삼갔던 옛사람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말에 대한 공자님의 가르침은 “더듬거린다”고 했고, “쉽게 뱉지 않는다”고 했으며, “말의 흠을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한자 표현으로는 ‘어눌하다’는 뜻의 ‘눌(訥)’자인데, 보조국사 법명이 ‘지눌(知訥)’이고 효봉선사의 다른 이름이 ‘학눌(學訥)’인 것도 다 이런 겸손의 표현이다. “황제는 말이 없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황제는 지고지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사람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야한다는 뜻이리라.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를 원하는 현 민주사회에서는 선뜻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말이지만, 원칙 없이 쏟아놓는 말보다는 폐해가 적다.

국민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4대강이 파헤쳐지고 있다. ‘행정도시특별법’은 2002년부터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의 목표로 만들어 2005년 국회에서 여야의 ‘국민적 합의’아래 제정된 실정법이다. 2009년 현재 세종시 건설예산 약22조원 가운데 24%인 5조 4천억원이 투입되었는데도 원론이 크게 변질될 상황에 처했다.

법치를 신봉하거나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원칙과 질서마저도 유린되면 사람이 법 위에 서는 꼴이라서 이런 사회는 민주주의의 대의에도 맞지 않다. 쇠고기 파동부터 시작해서 하는 것마다 힘겨루기 양상이 재연되고 있다. 힘은 또 다른 힘을 낳는 법.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으로 살기도 바쁜 세월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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