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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본래 자리로

기자명 법보신문

숲은 빗살무늬 사이로 법성의 바다를 드러내고 있다. 앞마당 참나무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잎새들이 며칠 남지 않는 달력처럼 애잔하게 걸려 있다. 바람은 머지않아 한 티끌도 남기지 않고 본체를 천지간에 드러낼 것이다.

자연은 계절마다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활발한 작용을 드러내지만 이제 시절인연에 따라서 일체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끝없이 생멸하는 인연을 일념 반조하여 삼계가 오직 유심이며 만법이 유식인줄 알면 뿌리가 드러나 더 이상 잎 따고 가지 찾는 일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낙엽귀근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생멸하는 인연에 집착하여 밖으로 구하는 업력을 쉬지 못하고 끝없이 천류하는 의식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무기공의 차가운 기운에 빠져서 훈훈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목선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참으로 한번 크게 죽어서 양변을 초탈해야 비로소 한 법도 지킬 것이 없고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어 삼계가 바로 일심이며 만법이 오직 유식이라는 도리에 사무칠 것이다.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견문각지를 통하여 쉼 없이 생멸하는데 범부는 식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식을 분별하고 대상을 취하여 이것이 허망한 줄 모르고 집착하므로 써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체 모든 경계가 마음의 모습이며 일체 이름이 마음의 다른 이름인 줄 깨달아 생사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허공은 모양이 없고 시작과 끝이 없기에 삼라만상을 능히 포용하고 끝없이 성주괴공의 작용을 드러내어 무상을 보이지만 허공 자체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허공과 같지만 신령스럽게 아는 성질이 있으니 허공을 집어 삼켜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마음에 한 생각 무명의 구름이 일어나면 하늘에 먹구름이 일어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위는 밝지만 아래는 어둡듯이 미혹 속에 헤매게 되어 일체 상이 상이 아닌 줄 모르고 본래 천진한 성품을 등지게 된다.

조사선이란 허공에 먹구름이 바람의 인연을 만나면 순식간에 벗겨지고 해와 달이 본래의 빛을 발하듯이 선지식을 만나 직지인심의 가르침을 받은 학인이 언하에 성품을 보아 미혹의 먹구름을 일시에 벗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언하에 깨닫지 못하면 선지식의 지시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의정으로 참구하여 화두를 타파해야 하니 이것이 간화선이다. 한편 본래 구족해 있어서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요달하게 된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는 수행이 부족한 사람이 큰 허물을 짓는 것 같아서 몇 번 그만 두려고도 했지만 오직 법을 드러내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시은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정진을 했지만 괜히 평지에 풍파를 일으킨 것 같아서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돌이켜 보니 삼년 세월이 참으로 귀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법보신문과 여러 독자들에게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이제 참나무에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한 법도 설하지 않았으며 한 글자도 쓰지 않았던 본래 자리로 돌아가 더욱 정진을 해야겠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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