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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겨울 회상

기자명 법보신문

새벽 법당 가는 길이 더없이 행복하다.
새벽 찬 기운이 얼굴을 짠하게 스치면 왠지 내가 살아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제주는 참으로 아름답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맑은 공기, 깨끗한 환경, 아름다운 풍치, 어느 하나 모자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겨울의 차가운 날씨를 너무 좋아하는 내겐 항상 2% 부족한 게 사실이다.

지난주에는 제주지역 사찰에서 처음 운영하게 될 중증장애인요양시설 자광원을 개원했다. 한 달 전 개원 날짜를 잡고는 매일 노심초사했다. 야외행사라서 동장군이 조금만이라도 심술을 부린다면 행사를 망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행사 날은 정말 날씨가 좋았다. 마치 봄날처럼 따가운 햇살 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행사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자꾸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가 지워졌다. 어쩔 수없이 나 자신도 자연인이 아니라 업무에 찌들어 가는 구나하는 생각에서 였다. 일이 주어지지 않은 시절에는 늘 겨울을 좋아했고, 차가운 북풍한설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내게 일정 몫의 일이 주어지고 부터는 나의 감성적 삶은 여지없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여야만 했다.
따스한 감성의 이야기로 연명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살벌하게 변해가는 것 같다. 자연에 동화되어 뺨에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 행복해 하던 소년의 시대는 진정 지나가 버렸을까? 너무나 차디찬 이성이 지배하는 냉랭한 사회에 적응되어지도록 우리들은 너무 오래 길들여진 것만 같다.

젊은 시절 스스로를 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라고 칭하며 호탕해 하곤 했다. 과거보다는 미래의 꿈을, 집단보다는 개인적 가치관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낭만주의의 명제는 보다 분명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 주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낭만주의를 꿈꾸며 살아왔고, 살아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은 왠지 힘차게 살아볼 가치가 있는 듯 했다.

서귀포 불교대학은 입학 대기생이 정원의 3배수에 달한다.
지금 입학신청해도 삼수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 정말 불교의 교리와 학습에 우리 불자님들이 이토록 목말라 하는 줄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가끔 교리학습에 대한 열의가 많은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차갑게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리를 학습하지 못했던 시절 스님들께 전해 듣는 벽화이야기에 감동해 하며 부처님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무슨 설명을 하면 출처와 이설에 대한 논쟁을 일삼으려 하는 모습은 접할 때가 종종 있다. 한번 잃어버린 마음속의 순수를 되돌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망각의 숲속으로 사라진 기억을 되살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늘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붓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현학적인 교리 이야기가 아닌 감동을 전하고 싶다. 스스로의 삶을 관조하며 세상을 향한 한없는 애정을 품고 살아가신 한분의 삶의 이야기를 찾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이 아침, 그토록 그리워했던 차가운 겨울 날씨에 스스로 불안해했던 시간이 자꾸만 잃어버린 시간같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성원 스님은
1993년 해인사에서 혜인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 97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강원과 송광사 율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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