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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98. 번뇌를 벗으려면

기자명 법보신문

‘나’의 무상 깨닫는 순간 번뇌는 소멸

번뇌가 다해 신도 귀신도 사람들도
그 자취를 알 수 없는
존경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불교에서는 ‘번뇌가 다한 상태’를 달리 표현해 ‘지혜가 완성된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번뇌와 지혜는 정반대의 개념이고 번뇌가 다하면 지혜를 이루고 깨달음의 길을 완성하게 된다. 초기 불교에서 깨달음의 단계를 이야기 할 때에, 제일 마지막 아라한의 단계를 번뇌를 완전히 끊은 성자라고 한다. 여기에서 불교가 반드시 끊어 버릴 것으로 강조하는 번뇌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서양 신학에서 번뇌에 해당되는 것은 원죄(原罪)다. 이 원죄는 신(神)에 대한 고만(高慢)과 거부(拒否)를 의미하므로, 신에 대한 고만을 버리고 신의 구원을 받을 때 비로소 원죄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불교적 번뇌의 발생은 중생이 자신의 내면적인 본질에 대해서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 곧 무명(無明)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를 학자는 지혜의 결여인 무명이 나타나는 것이 번뇌의 제일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매 순간의 지적인 인식의 결여는 우리들 삶 속에 집착과 얽매임의 연속인 윤회의 현상으로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번뇌의 제일 원인은 무명

따라서 번뇌를 끊고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절대자의 구원을 얻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서 무명을 깨버리는 일, 곧 참다운 지적인식을 자신의 내면에 확립할 때 번뇌를 끊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이론이다. 이는 개인의 자각에 있다. 그리고 번뇌를 끊음으로서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끊어 버리고 새롭게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인 무명의 방향에서 지혜인 밝음의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식을 전환하면 윤회의 고통이 곧 열반의 즐거움이 되고 불변한다고 본 나의 존재는 매순간 변멸해 가는 무상(無常)의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무상의 존재임을 확실히 깨닫는 순간에 이미 생의 집착은 사라지고 번뇌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의 집착을 벗어난 사람들, 윤회의 서클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참다운 의미에서 성자라고 한다. 삶과 죽음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고통과 즐거움이 우리의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근원을 깨달은 사람이다. 번뇌를 벗어나서 집착 없는 삶을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우리가 추적 가능한 한계를 벗어나서 생사를 자유롭게 오고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신도 귀신도 사람들도 그의 자취를 논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미 그 사람에게는 지옥과 천당의 통로가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지옥에 있으면서 고통에 빠지지 않고 천당에 있으면서 즐거움에 매료되지 않는 경지를 간직하는 수행자는 성자의 반열에 올라서 남에 의하여 관리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착은 번뇌의 온상이 된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상에는 번뇌를 떨쳐버린 사람보다는 번뇌를 덮어쓰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번뇌는 줄지어 늘어선 공장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듯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에 번뇌를 끊는 방법론이 끝없이 설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불현듯 하나의 번뇌가 일어나면 그 번뇌는 다음 단계인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 번뇌의 움직임은 우리의 어리석은 행위로 이어지고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업(業)을 만들어 간다. 죄업(罪業)으로 뒤덮인 중생세계가 벌어지는 것이다. 중생의 죄업으로 뒤덮인 세계는 청정할 리가 없다. 탐욕이 엉키고 애증이 교차하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우리의 마음에 한 생각 번뇌를 일으키면 온 국토가 번뇌로 뒤덮이는 것이다. 한 마음의 번뇌가 자취를 감추면 번뇌가 사라진 청정한 국토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생각 번뇌가 세상 뒤덮어

『잡아함경』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이 번뇌에 얽매여 있으면 곧 바로 중생들이 다 번뇌에 휩싸여 있게 되고, 마음이 깨끗하면 역시 중생도 함께 깨끗해진다(心惱故衆生惱 心淨故衆生淨)고 하며, 원효 스님의 깨달음처럼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현상이 벌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온갖 현상이 소멸한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또한『원각경』에서는 한 마음이 청정해 지면 눈으로 보는 바깥 대상이 청정해 지고, 대상을 청정하게 보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모두 청정해 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한 세계가 청정해 지면 온 세계가 연동해서 다 청정해 진다는 것이다. ‘청정’은 곧 ‘번뇌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번뇌의 본질과 일어나는 과정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번뇌를 일으키는 제일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경전에는 누누이 ‘있는 그대로 참모습을 관찰한다’는 여실관(如實觀)과 실상관(實相觀)을 강조하고 있다. 허상(虛像)에 빠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허상에 물들지 않고 허공의 맑음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항상 맑음을 지켜갈 수 있을 때, 바로 번뇌를 전환하여 지혜를 품게 되며,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보이게 된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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