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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백골이 된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겨울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내린다.
며칠 전만해도 폭설주의보를 내렸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이곳 약천사가 있는 중문해변은 정말 따스하다. 연중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어제 저녁 경찰서에서 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라산 남면 계곡에서 이제 막 백골이 된 시신을 발견 했는데 승복을 입고 있었다면서 혹 주변에 행방불명된 스님이 안계시냐고 물었다. 전화를 내려놓자 많은 상념이 스쳐갔다. 스산한 계곡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이제 백골로 남아있는 수행자를 생각해봤다. 어쩌면 스님들은 모두가 행불자일지도 모른다.

잠시 절에 왔거나 머물다가도 가는 곳을 말하고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스님도 어느 날엔가 약천사를 거쳐 스스로 삶의 마지막 길을 찾아 그 계곡으로 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괜스레 스쳐지나간 객승들을 따스하게 보내드리지 않았던 때는 없었는지 조바심이 일기까지 한다. 백골이 되어 누워있는 그 스님은 무슨 이유로 스스로 마지막 길을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혹여나 지친 삶의 힘겨움으로 인해 힘겹게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제주에 살다보면 스님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 내려오는 경우가 제법 잦다. 절에 머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정처에 숙소를 잡아 겨울 한철을 채비하기도 한다. 여유로운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하지만 스님들이 겨울철 남하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스님들의 노후복지에 관한 얘기로 귀결되기 일쑤다.

애정 어린 많은 불자들도 스님들의 노후에 대한 얘기를 자주한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지만 현실적으로 승려의 노후문제는 그리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우선 재원 마련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출가라는 근본의식과도 관계가 있다. 처음 발심하여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출가 수행자들에게 완전한 노후의 삶이 보장된다면 출가수행의 생명력은 많이 약화 될 것이 분명하다.

늙음은 죽음과 달리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너무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맞을 준비는 차치하고라도 늙음에 대한 준비는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노인요양 시설에 갔더니 스님들도 몇 분 계신다고 자랑삼아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가기 전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설은 사찰에서 뚝 떨어진 공터에 위치하고 있어 애써야 종소리가 겨우 들릴 정도였다. 일생을 부처님 가까이 살아온 스님들의 마지막 길이 목탁소리와 종소리마저 듣기 힘든 외딴곳이라니 너무 쓸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열반당까지는 아닐지라도 모든 사찰에서 노스님들을 모실 수 있는 요사 한 채쯤은 마련해두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가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고 물을 때면 ‘지금 주변에서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돌보는 일 것이 노후 준비다’라고 말하곤 했다. 아직 늙음도 죽음도 두려운 나이가 아니지만 우리들이 현재의 노스님들을 위해 따스한 배려의 공간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들도 어느 차가운 계곡의 이름 모를 백골이 되어 또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삶과 죽음의 무상을 이야기 하기는 쉽지만, 늙고 병들어 받는 고통의 무상함을 누가 노래 부를 수 있을까?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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