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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유언장과 무소유

기자명 법보신문

승려들의 사후재산 처리를 두고 말들이 많다.

조계종은 그동안 입법만 한 채 실행을 미루었던 승려 사후재산의 종단귀속에 관한 시행령을 마련하고 실행하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많고 근본적 취지에 적극적인 분위기를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 스님들의 출가정신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행령의 조급한 시행으로 적잖은 오해와 많은 스님들로 하여금 유쾌하지 못한 감정을 지니게 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소유하게 된 재산이 혹여라도 사후에 승단에 계속 남아 있지 않게 될까봐 염려하는 스님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시행에 따른 심리적 반항은 적지 않은 것 같다.

또 유언장에서 기부 받게 되는 주체를 유지재단으로 일괄 한정함으로 해서 많은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침 이러한 소소한 일들을 검토하여 조율하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번 일로 승단 내부에서 소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이 사실이다. 출가 수행자들의 철저한 무소유를 주장하는 자이나교도가 아닌 이상 소유에 대한 정당성 부여와 생전이던 사후 던 간에 적정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 누구도 일방적으로 사회적 부자들을 매도 할 수 없듯이 개인의 치부로 모은 재산이 아닌 이상 절대적 잣대로 재산의 대소를 가지고 그 수행자를 폄하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잘 아는 스님 한분이 보육시설을 마련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갑작스럽게 입적하신 일이 있었다. 입적 후 그간 모아두었던 통장의 잔고가 나타나자 이를 이유로 스님이 매도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소유로 두었던 것을 갖고 과분하게 소유욕을 부리는 스님으로 매도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서 살아가야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무소유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 수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소유는 사상적 가치관의 소유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들이 부처가 아닌 이상 반드시 변화해야 하고, 변화 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관습으로 갖고 있는 무수한 개념들이다. 정말이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수행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물질적 소유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개념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열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최근 펜을 잡고 비록 재산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유언장을 써 보았다. 참으로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내게로 와서 소중한 꽃이 되어진 것들에 대한 석별의 정 때문이었을까?

유언장을 다 쓰고 보니 곁에 있는 많은 소유물들이 스스로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모두 돌아 서 있는 듯했다. 약간의 서운함과 함께 느껴지는 개운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을까? 유언장을 다 쓰고 밤으로 나가 보았다.

제법 훈훈해진 제주의 봄기운과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탑 주위를 서성이는 보름달과 그림자. 아직도 내게는 집착의 유혹을 유발시키는 소유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출가 첫날 이 유언장을 작성 했더라면 얼마나 출가의 삶이 개운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쩌면 이제부터 출가 수행자는 두 분류로 나뉠 것만 같다. 유언장을 쓴 스님들과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은 스님으로.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었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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