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천하며 대중들에게 무소유(無所有)의 지혜를 일러주던 법정 스님이 3월 11일 오후 1시 51분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56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가르치고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대중들에게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제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주십시요”라는 말을 남겼다. 스님은 입적에 들 때까지 이처럼 무소유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스님은 또 머리맡에 남아 있던 책을 자신의 저서에서 약속한 대로 신문을 배달하던 배달부에게 전해줄 것을 상좌들에게 당부함으로써 어떠한 약속이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의 사회 구현을 몸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법정 스님은 또 『무소유』,『일기일회』등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하는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법정 스님은 평소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상좌들에게 당부해왔다.
이같은 스님의 유지에 따라 송광사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3월 13일 오전 11시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다비할 예정이다. 또 일체의 조화나 부의금도 접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객을 위한 분향소는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과 설법전, 송광사와 불일암 등 4곳에 마련돼있으며 3월 12일 오후 12 송광사로 이동, 사자루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날인 3월 13일 다비식을 갖는다.
길상사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스님의 유지와 『무소유』 중 ‘미리 쓰는 유서’에 담긴 내용에 따라 관과 수의를 따로 준비하지 않았으며, 스님의 법체는 평소 사용하던 대나무 침대에 가사를 깔고 그 위에 모셨다.
법정 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 근대 고승으로 추앙받던 효봉 스님을 은사로 1954년 출가한 이래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해인사에서 대교과를 수료한 이후 무소유 정신을 강조하며 수행에 매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