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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행장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0.03.11 14:56
  • 댓글 0

법명 : 法頂(속명 朴在喆)

▶1932년 2월 15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朴根培 씨와 金仁葉 씨의 아들로 출생. 우수영 초등학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상과대학 3년 수료.

▶1954년 2월 15일       
  통영 미래사로 입산 출가

▶1956년 7월 15일       
  송광사에서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

▶1959년 3월 15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

▶1959년 4월 15일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화상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

▶1960년 초봄~1961년      
  운허 스님의 부름을 받고 통도사로 가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고 이 일을 계기로 타고난 문재(文才)를 발휘해 글을 쓰기 시작함. 한편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함.

▶1967년                
  동국역경원 개설에 참여하고 역경위원으로 활동

▶1972년
  스님의 첫 저서인 「영혼의 모음」발간됨

▶1973년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 역임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유신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했으며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함.

▶1975년 10월           
  불현듯 송광사로 돌아감. 인혁당 사건이 발생, 8명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음. 한편 반체제 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송광사로 가 뒷산 중턱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수행함. 

▶1976년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무소유」발간

▶1984년~1987년         
  송광사 수련원장 역임. 1971년부터 구산 스님이 시작한 송광사 선 수련회는 법정 스님이 수련원장을 맡으면서 크게 확산되었다. 한해 6~7차례에 걸쳐 5백여 명 이상이 참가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고 이와 같은 4박5일간의 짧은 출가는 전 불교계로 확산, 지금은 많은 사찰에서 선 수련회를 하고 있다.

▶1987년~1990년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역임

▶1987년
  미국 LA에서 김영한 보살(1999년 작고함)이 자신의 소유인 대원각의 대지 7천여 평과 건물(40여 동) 일체를 불교의 수행도량으로 바꾸어달라며 기증할 뜻을 밝힘. 이때 법정 스님은 ‘저는 평생 주지 노릇을 해 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주지가 될 생각은 없다’며 완곡한 사양의 뜻을 밝힘.

▶1992년
  저작 활동으로 명성이 높아져 불일암으로 많은 불자들의 방문이 이어지자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버리고간 오두막에서 지내기 시작함. 강원도 생활 17년째인 2008년 가을에는 묵은 곳을 털고 남쪽 지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함.

▶1993년 7월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해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을 지적함. 당시 기독교인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립기념관, 경복궁, 창덕궁 연못에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연꽃을 제거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각 현장을 직접 확인한 뒤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함. 이 글을 통해 날로 각박해지고 메말라만 가는 인심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기 위한 시민 운동을 주창함. 또한 불자들의 시주 덕분에 살아왔으니 그 빚을 갚는다는 뜻으로 ‘맑고 향기롭게’ 모임을 이끌게 되었음. 이 글이 발표되자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실태를 파악한 후 잘못된 일이라며 시정하겠다는 뜻을 전함.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발기인 모임. 현호스님, 청학 스님, 윤청광, 박수관, 김형균, 이계진, 강정옥, 정채봉, 김유후, 이성용씨 등 지인들의 권유로 순수 시민운동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시작함. 이 모임의 상징은 연꽃으로 하였고, 그 도안은 고현(조선대 교수)이 함.

▶1993년 10월 10일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 파리 길상사(송광사 파리 분원) 개원. 유럽 여행 도중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불자 교포들과 유학생들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 재불(在佛) 화가들과 함께 뜻을 모아 법당을 마련하는데 나섬. 이때 도움을 받은 화주불자들을 위해 ‘길상회’를 결성, 서울 법련사 옆 출판회관에서 매월 1회 모임을 갖고, <선가귀감> 등을 공부했으며 이 모임은 길상사 개원 때까지 이어졌다. 한편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 창립에도 도움이 되었다. 당시 실무는 청학 스님이 맡음.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법회.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창립 기념 대중 법문을 함. 같은 해 4월 4일에는 부산에서 역시 대중법문을 하여 일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킴. 맑고 향기롭게 모임은 순수 시민단체를 지향, 회원 각자가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후원을 하는데 힘입어 물이 흐르는 만큼 물길이 열리듯 회원들의 성의와 뜻을 모아 우선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니고, 이웃과 사회를 향한 나눔을 실천하며 소중하고 감사한 자연을 보전, 보존해가는 일에 힘쓰라는 스님의 뜻을 따라 전국 1만여 회원이 서울, 부산, 대구, 경남, 광주, 대전 등 6개 지역 모임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음.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마련,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학비 지원.

▶1995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이 조용히 정착하면서부터 김영한 보살이 거듭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힘. 네 차례나 사양하던 법정 스님은 주변 사부대중의 간청을 수락해 김영한 보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함. 다만 스님 개인이 아닌 조계종단의 이름으로, 자신은 상징적인 관리자(주지가 아닌 會主)의 입장에서 대원각을 기증 받겠다는 의지를 천명함.

▶1995년 6월 13일        
  대원각 터와 건물 일체를 길상사(吉祥寺)로 창건하면서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록함.

▶1996년 5월 20일        
  대원각 부동산 일체를 증여받음. 같은 해 6월 7일 서울지방법원 성북등기소에 등기를 마쳐 법적인 절차를 마침.

▶1996년 8월
  청도 운문사에서 1회 맑고 향기롭게 회원 수련회 실시. 임원 및 전국의 회원 80명 참석.

▶1996년 9월 26일         
  김영한 보살의 대원각 기증과 길상사 창건 소식이 <동아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킴. 당시 민심이 흉흉하던 터에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길상사는 창건 법회 이후까지 언론의 중심에 서게 됨.

▶1996년 12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취임. 회원이 생기고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모임의 공신력이 필요하다는 건의에 따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음. 이때 스님은 부득이 ‘이사장’이란 세속 직위를 받았으나 그것은 서류상의 직책일 뿐이라며 이사장 대신 ‘회주(會主)’라는 호칭을 사용함. 여기서 회주는 어떤 모임의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이후 불교계에서는 특정한 소임을 맡지 않은 어른 스님을 일컫는 말로 자리 잡게 됨.

▶1997년 1월 말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길상사 자문위원회를 통해 향후의 사찰 운영방안과 마스터플랜이 세워짐. 이때 같은 해 12월 14일을 창건 법회일로 정하고 차분히 개원을 준비함.

▶1997년 6월 말        
  기존에 대원각 터를 임대한 영업주가 임대 기간 만료일인 6월 말을 넘겨 11월 초까지 영업 기간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고 길상사측이 이를 수락해 창건에 따른 보수 공사가 지연됨.

▶1997년 8월
  김천 직지사에서 2회 맑고 향기롭게 회원 수련회 실시. 전국에서 120명 회원이 참석하였고 3박 4일간의 일정을 스님이 직접 진두 지휘하심.

▶1997년 9월~12월     
  길상사 초대(初代) 주지 청학 스님의 주도로 불철주야 창건 보수 공사를 실시함. 수십 년 동안 요정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을 일소하고 주요 건물을 극락전, 설법전, 요사채, 후원, 시민 선방 등으로 개조하는 일에 박차를 가함. 당시 법정 스님은 강원도 산골 마을에 주석하면서 길상사 창건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부대중을 여러 차례 격려함.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창건 법회. 4천여 불자가 참여한 가운데 경내 극락전에서 이계진(현 국회의원) 아나운서의 사회로 창건 법회가 진행됨. 각 언론사의 열띤 취재 경쟁 속에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창건 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여 다시금 화제를 불러일으킴. 이 날 법정 스님은 “길상사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길 바란다”면서 “선택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삶의 미덕이며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는 내용의 법문을 함. 김종서, 윤용숙, 김유후, 공종원 님 등을 자문위원으로 모심.
한편 법정 스님께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은 김영한 보살은 개원 법회에 참석해 “없는 것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는데 있는 것을 내놓았을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해 모든 이들의 가슴에 환희심을 일으킴.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길상화 보살의 뜻을 살려 “맑고 향기롭게 길상화 장학금”으로 바꾸고 이후 매년 전국의 중고교생 30명을 선정 장학금 지급함

▶1998년 2월 24일        
  명동성당 축성 100돌 기념 초청 강연. 김수환 추기경의 길상사 창건 법회 축사에 답례 성격도 있음.
  글 쓰는 일 외에는 좀체로 하지 않으셨던 대중 법문을 「맑고 향기롭게」근본도량 길상사 창건에 대한 책임과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 회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격월로 대중법문을 함.

▶1998년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명예 퇴직자를 위한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개설. IMF로 갑작스레 직장에서 내몰리게 된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마음을 다스리고, 내일을 다시 준비할 용기를 낼 수 있는 수행과 휴식의 공간으로 운영함

▶1999년
  서울 제기동 보문선원과 연대, 노숙자 무료급식소 개설. 매일 300명 이상의 노숙자들에게 점심 무료 제공.

▶2000년
  결식이웃 밑반찬 지원 사업 시작. 노숙자가 늘어나면서 결식아동이 늘어나고 무의탁 노인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결식이웃 밑반찬 지원 사업을 100가구에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여 년간 지속하고 있음. 2010년 현재는 330여 가구를 지원함.
  환경 문제의 올바른 인식 및 자연의 소중함을 체험을 통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찰생태문화 기행을 시작, 2010년 현재까지 실시하고 있음.

▶2003년 12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회주에서 스스로 물러남. 당시 스님은 맑고 향기롭게 모임의 이사장직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임원들의 거듭된 만류로 사임의 뜻을 철회함.

▶2004년
  그간 격월로 해 오던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에서의 대중 법문을 연 2회, 4월과 10월 두 번 하심.

▶2005년~2007년
  ‘맑고 향기로운 책’을 월 1권 선정. 3년 간 총 36권을 회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읽기를 권유, 독서문화 확대 운동을 펼침.

▶2007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음. 그러나 이 병고도 당신을 찾아온 친지 중 하나라며 어르고 달래며 지내시겠다는 것을 친지 및 상좌들이 수차례에 걸쳐 간곡히 권유해 치료를 위해 도미함. 세계 최고 권위의 의사들조차 성공률 4%라며 치료를 주저하였으나 ‘이 분은 수행자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친지들의 강력한 주장에 치료를 시작,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며 담당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회복하심

▶2008년 2월
  미국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귀국하심. 이후 다시 길상사에서의 정기 대중법문 하시고, 글도 다시 쓰실 정도로 회복하심.

▶2009년 4월
  병고가 재발하여 치료, 요양하심.

▶2010년 3월 현재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길상사의 ‘어른 스님’으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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