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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한 장 살포시 덮은 님, 마지막 걸음도 텅빈 충만입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0.03.13 13:41
  • 수정 2011.02.28 15:43
  • 댓글 0

'무소유' 법정 스님 다비 현장
13일, 조계총림 송광사 다비장서 엄수
1만 대중 비통한 오열 마지막 길 배웅

“수고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승복 입은 채로 다비해달라.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

긴긴밤을 달래주던 대나무 침대, 관 대신 덮은 가사 한 벌과 평소 입었던 승복이 전부였다. 한 평생 청빈한 수행자로 산 법정 스님은 당부대로 떠나는 순간도 검박했다.
3월 13일 오전 6시, 조계총림에 새벽 미명이 내려앉았다. 법정 스님의 법체가 모셔진 순천 송광사 대지전의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법구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던 상좌 스님들의 눈이 젖어 들었다. 법정 스님이 떠날 채비를 했다. 문밖의 대중들은 혹여 흐느낌이 스님 가는 길에 누가 될까 차마 소리 내지 못하고 입을 가렸다.

대신 범종이 애처로이 울었다. 108번의 타종은 조계총림을 휘감으며 대지전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법정 스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들 역시 스님이 내디딜 곳을 쉬이 내어 주지 못했다. 이윽고 대웅전에 이르자 법정 스님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니 서로를 해하거나 탐하지 말며,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과 무소유를 깨닫게 한 스승에게 한 소식 잘 배우고 간다는 인사이리라.
법정 스님은 표표히 다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송광사 200여 대중 스님들과 1만여 추모객들도 스님을 뒤따랐다. 법체를 모신 학인 스님들의 표정은 엄숙함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했다. 석가모니불 염송이 법정 스님을 배웅했다.

연화단에 오른 법정 스님은 가벼워보였다. 본디 왔던 길도 일체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았으니 가는 길도 미련이 없었다. 거화(擧火). 불이 들어갔다. 스님은 이생에 마지막 남은 소유물인 육신에 불을 노잣돈으로 삼았다. 법체를 휘감은 불길이 피워낸 연기는 대중들의 비통함을 머금고 하늘로 넓게 퍼져나갔다.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졌다. 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은 대중들은 애절한 마음을 스님의 마지막 길 앞에 눈물로 흩뿌렸다.


지팡이에 의지해 다비장까지 오른 남해 천은사 신도 김동화(79) 옹은 “스님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그 분의 무소유 가르침은 잘 안다”며 “안타깝게 가시지만 가는 길도 청빈한 참 수행자이시다”고 울먹였다.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다. 한 조각 구름처럼 일어난 삶을 구름 한 조각 스러지는 것처럼 법정 스님은 그렇게 이생과의 인연을 접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자 했던 스님의 바람대로였다. 그러나 맑은 가난과 맑은 행복은 벌이 꽃의 꿀만 취하는 것처럼 소욕지족하는 삶에서 온다는 스님의 가르침만은 오래도록 세인의 가슴에 남게됐다. 돈 때문에 아비와 어미를 죽이는 세상, 무관심으로 지하 단 칸 방에서 홀로 죽음을 맞은 노인, 오로지 자신 만의 이익을 좇는 우리네 모난 마음을 쓰다듬지 않았던가. 바닷가 조약돌이 무쇠의 정이 아닌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로 생긴 것처럼 스님의 가르침은 우리네 각진 마음을 어루만졌으니. 연기로 돌아간 스님의 가르침은 구름으로 빗물로 냇물로 강으로 바다로 그리고 다시 구름과 빗물로 화해 대지와 국민들이 가슴을 촉촉이 적시리라. 태고의 진리처럼 그렇게 스님과 무소유의 가르침은 그 생명을 끝없이 이어갈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는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텅 빈 충만이다. 법정 스님은 버리고 간 것이 아니리라. 대중들의 가슴에 청빈한 수행자로, 맑은 가난이 맑은 행복을 준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하여 스님은 아무것도 갖지 않았지만 비로소 온 세상을 가졌다.
법정 스님 상좌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은 “스님의 법체를 태우는 이 무상한 불길은 맑은 가난과 맑은 행복, 무소유의 가르침이 연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라며 “이제 저마다 자기 가슴속에 돌이켜 삶 속에서 스님의 고결한 뜻을 되새겨 참다운 연꽃을 찾아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다비 다음날인 3월 14일 오전 10시경, 타거나 그렇지 않은 뼈를 수습하는 습골 의식이 진행됐다. 사리를 찾는 번거로움과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스님의 유지대로 거둔 뼈는 하얀 가루가 되어 함에 담겼다. 상좌 스님들은 함을 건네받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어느 곳에 뿌린다 했다.


홀연 나뭇가지가 일렁였다. 새 한 마리가 창공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갔다.
다비 이후 법정 스님의 49재와 추모법회가 봉행된다. 입적 7일째인 초재는 3월 17일로 이후 매주 수요일 길상사에서 재가 치러진다. 마지막 재는 4월 28일 송광사에서 진행되며, 길상사는 3월 21일 추모법회를 열 예정이다.

송광사=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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