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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 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역사의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 아는 사람
자연·역사 흐름 억지로 바꿀 땐 화 자초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가는 법이고 그 때가 되면 기운이나 날씨가 거기에 맞추어져야 모든 만물이 편안하다. 그런데 요즘은 인위적으로 그 순환을 틀어버리는 탓인지 시절도 일정치가 않고 오락가락 하는 듯하다.

며칠 전 우연히 세계적으로 손꼽힌다는 유명한 스페인 건축가 한 분이 방에 들렀다. 부산에 어린이대공원 설계문제로 왔다가 통도사를 방문해 동행하신 분들에게 스님을 만나고 싶다고 청을 넣어 오셨다고 한다. 약 3주전에 아버님을 여의어 마음이 텅 비어 나간 듯 하다고 했다. 그 분에게 죽음이란 누에가 고치에서 벗어나 나비와 되어 날아가는 것과 같고 당신의 아버님은 어디선가 당신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 터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우리 사찰 건축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신의 건축 개념도 이와 비슷해 자연의 에너지 흐름과 조화-우리식 표현으론 기(氣)의 순환과 풍수와의 조화에 해당될 것 같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요즘의 건축물들이 그 자체의 활용과 모양에만 집중하다보니 조화롭지 못하고 돌출되고 기의 흐름을 차단한다고 하자 크게 공감을 나타내었다.

이렇듯 서구의 앞서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직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발생된 현대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우리의 조화와 순환적 사고에서 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답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이를 간과하고 단편적 활용성과 자체를 부각 시키는데 급급하다.

조금은 쉬어가고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할 줄 알고 한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만 조화와 균형 그리고 순환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고려하는 것이 바로 풍수이다. 그리고 그 말에 드러나듯이 풍수의 가장 핵심이 바로 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인위적으로 막아 가두고 돌려 우리의 욕구를 채우려 한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현실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아 억지와 단지에서 오는 절망을 떠안게 되고 부질없는 일 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 인근 삼가저수지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99칸 고택이 있는데 한말에 지어진 선병국 고택이다. 풍수가 아주 뛰어난 자리에 들어선 것이 연꽃 봉오리 안의 연밥을 닮았다. 그런데 이곳이 90년대 말에 큰 물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큰 시내를 인위적으로 처리한데서 비롯된 인재였다. 고택의 주위로는 만수산과 구병산에 내린 물이 모인 큰 시내가 고택의 얼마 안 되는 위쪽에서 두 줄기로 갈라져 집을 감싸 돌다가 다시 하나로 모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위에 저수지가 생기고 위쪽의 시내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게 되자, 더 이상 이것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이를 메워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큰비가 내리자 하나의 시내만으로 감당 못하게 되었고 결국 그 물이 고택으로 밀려들어 많은 피해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물은 메워진 시내를 다시 파내 원래로 돌려놓았다.

이처럼 근시적 안목에서 일을 추진해 흐름과 조화를 놓치게 되면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보면 자연과 역사의 그 도도한 흐름을 억지로 어찌 해보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역사의 주인공은 자신들만의 사명감에 사로잡힌 지나친 억지에 의해서는 탄생되지 않는다. 역사의 주인공은 그 시대의 흐름을 명확히 알고 자신을 이에 싣고 열정과 조화를 통해 새로움을 열어가는 시절이 낸 사람일 것이다.

봄의 문턱인데 문밖에는 간밤에 내린 눈이 매화를 덮어 온전히 귀한 설중매가 피었다. 설중매의 모습도 귀하지만 설중매의 고귀한 절개가 필요치 않는 평안한 시절이라면 더욱 좋겠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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