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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28.애매모호성이 진리다

기자명 법보신문

둘로 선명하게 가르는 건 인간의 억지 구상
애매모호는 ‘틀렸다·나쁘다’ 극단 버린 것

생/사(生/死)와 거/래(去/來)를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로 보라고 부처님은 가르쳤다. 그래서 여래가 이 땅에 오셨고, 여래가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신 여거(如去)도 하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둘이 아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야생인의 사유방식으로 모든 것을 이중적 대칭의 균형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 사고방식을 그는 야생적사유(la pensée sauvage=savage mind)라 불렀다.

이것은 인류의 무의식적 사유와 같은 것인데, 일본의 인류학자인 신이치로(新一)는 붓다의 이 사유는 붓다 당시 인류의 역사적 진행의 방향인 다신론에서 일신론으로의 진행 과정과는 역행하는 방향으로 회귀시키는 것으로 인류사의 가장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사건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좌우간 불교의 사유방식은 인류의 문명진행의 의식적 사유방식(신학과 유학)과 분명히 그 궤도를 달리한다. 인류학적으로 야생적 사유가 철학적으론 존재론적 사유이고, 심리학적으론 융이 말한 대극적 사유(Enantiodronie=음양적 사유)에 해당한다.

그 야생적 사유가 이 세상의 실상이고, 의식적 진보의 사유는 한낱 허깨비와 같은 망상에 해당하는 셈이다. 승찬대사의 『신심명』도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세상의 실상을 선적(禪的)인 어구로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나 『신심명』을 관통하고 있는 논리는 역사의 발달사와 그 문명사를 꿰뚫고 있는 개념적 지성의 논리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그것이 논리적인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논리에 해당할 뿐이다. 논리가 없으면 인간의 사유가 정지되고 마비된다.

나는 이 개념적 지성(이성)의 논리와는 다른, 불교가 지닌 사유의 논리를 노자의 『도덕경』이 말하는 포일적(抱一的=포괄적 하나)논리라고 말하고 싶다. 포일적 논리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직선적인 것은 곡선과 한 쌍을 이루고 있고, 텅 빈 것은 가득 찬 것과 상관적이고 낡은 것은 새로운 것과 둘로 나누어 지지 않는다고 한 것을 말한다. 서로 상반적인 것들을 이원론적으로 또는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는 지성적(이성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그 두 상반된 것들을 상관적으로 보는 기호적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기호적 상관성은 개념적 독립성과 다르다.

개념적 사고방식은 예컨대 인간은 동물이니까 식물과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여기고, 또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므로 비이성적 동물인 짐승과 별개의 다른 개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호적 사고방식은 개념처럼 별개의 독립적 구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높은 산봉우리는 깊은 골짜기와 별개의 독립적인 의미단위로 다가오지 않고, 긴 나무는 짧은 풀과 별개의 기호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도 이와 같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상호작용을 하면서 동거한다. 이런 차이의 동거를 일컬어 노자는 포일이라고 불렀다.

포일의 논리는 개념적 지성의 택일적 논리와 아주 다르다. 포일의 논리는 ‘빛과 소금’의 논리처럼 흑백적 선택의 선명성의 논리와는 다르다. 세상을 빛 아니면 어둠으로 나누어 갈라놓고 서로 투쟁케 하는 그런 호전적 논리가 아니다. 따라서 불교가 말하는 포일적 논리는 역시 노자가 말한 습명(襲明=밝음에 약간 옷을 입힘)의 논리와 유사하다.

세상을 애매모호하게 놓아두는 사유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을 강/약과 명/암과 선/악이 항상 공존하는 애매한 이중성의 지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면도날처럼 이중성을 선명하게 갈라놓는 것은 세상의 실상을 모르고 날뛰는 인간이 만든 억지 구상에 불과하다. 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결코 틀렸다든가 또는 나쁘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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