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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 茶순례] ③ 호남성박물관·〈끝〉

기자명 법보신문

기원전 2세기부터 상자에 담아 차 유통

 
기이한 산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는 장가계. 이곳에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웠던 장량이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장가계는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한 경승지로, 상서 북쪽의 대용현, 지리현, 상식현이 만나는 지점에 무릉원이 있다. 유방(BC247~BC195)을 도와 한나라를 세웠던 장량(?~BC168)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 그를 일러 “세상의 현상을 헤아려서 손을 들고 눈을 움직여 항우를 위협하고 통제함에는 장량만한 이가 없다”고 했던 소순(蘇洵1009~1066)의 「고조론(高祖論)」은 천하의 명문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일찍이 “어지러운 세상은 함께 할 수는 있어도 치세(治世)에는 함께 하기 어렵다”던 유방의 사람됨을 미리 간파하여 몸을 피해 온 것인가.

제후 묘 마왕퇴서 유물 무더기로

장가계와 근 거리에 있는 원가계는 기이한 산봉우리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최근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문을 여는 자물쇠가 있다는 천쇄(天鎖), 이곳으로 오르는 난간에는 무수히 많은 자물쇠들이 달려 있다. 사랑하는 남녀의 영원한 인연을 기원하는 든든한 상징물이다. 천 길이나 되는 절벽 아래 열쇠를 던짐으로서 이별 없는 영원한 사랑이기를 기약하는 소박한 연인들의 염원이 애잔하다.

절벽을 내려오다 보니 두 산봉우리 사이로 가로 놓인 천연 돌 판은 자연이 만든 다리. 천교(天橋)라는 이름 또한 이름답다. 이 다리를 건너면 하늘로 들어갈 수 있을 듯, 머리 위로 아스라한 천교를 지난다. 선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오는 것은 백룡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313m 높이의 암석 기둥을 불과 수 분만에 내려온다. 산정에 펼쳐진 비경은 무릉도원이라 일컬어짐이 어색하지 않다.

소상팔경 중에 강천모설(江天暮雪)의 배경은 장사의 귤자주(橘子洲)에 위치한다.
이곳의 눈이 내리는 저녁, 강과 하늘이 하나로 맞닿아 있는 풍광은 강천모설(江天暮雪)이 분명하련만 지금은 자욱한 안개 사이로 겨울비가 내린다.
조선의 시인 권상일(1679~1750)은 눈 내리는 겨울 강을 이렇게 노래했다.

강과 하늘은 공활한데 눈보라가 치니 (江空天闊雪風斜)
순식간에 모든 숲에 하얀 꽃이 피었구나.(頃刻千林白作花)
나귀 타고 매화 찾는 사람 보이지 않고 (驢背尋梅人不見)
나룻배만 언덕 가에 매여 있네. (扁舟繫在岸邊家)

끝없는 강물은 흐르는지 머물러 있는지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다. 도롱이 쓴 어옹(漁翁)은 간데없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만이 옛 풍치를 간직하고 있다. 가늘게 내리던 비가 점점 세차진다. 서둘러 다음 행선지인 호남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1970년 호남성 장사 동부에서 발견된 마왕퇴 유물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마왕퇴 1호 묘에서 발굴된 묘주의 유체는 220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이 묘에서 발굴된 금, 은, 목기 그리고 도기, 옥기, 견직물, 칠기류 등의 생활 용구는 수천 년 전의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묘는 한 무제(BC141~BC87)의 재위기 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되어 한, 초의 생활양식과 시대상을 반영한다. 더구나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마왕퇴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이 묘는 한의 제후였던 장사국 승상 이창과 그의 가족묘다. 세상에 제일 먼저 알려진 이창의 부인 신추(辛追)의 묘인 마왕퇴 1호 묘, 2호 묘는 이창, 3호 묘는 이창의 아들의 묘가 차례로 발굴되어 이창은 BC 186년에 사망하였고 이창의 아들은 BC 168년 2월에 사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묘는 목곽묘로 초나라 말기의 무덤 형태로 알려졌는데 거대한 관곽(棺槨)은 네 겹의 곽과 세 개의 관으로 이루어졌다.

관곽은 길이만도 6.73m이며 너비가 4.9m, 두께만도 0.4m에 이른다. 곽의 내부는 井자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井의 중앙에 묘주의 관이 있고 관을 중심으로 사방 4개의 방이 있다. 알려진 마왕퇴 유물은 대부분 동서남북에 위치한 4개의 방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 귀족들은 대나무 자리를 깔고 살았던 사실이나 사방에 비단 휘장을 장식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특히 1호 묘의 신추 묘에서는 ‘첩신추(妾辛追)’라는 인장이나 제후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鼎), 합(盒), 관(鑵)이 다량 출토 되어 당시 제후인 이창의 지위를 가름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밝힐 수 있는 벼, 보리, 밀, 팥, 배, 딸기, 말린 대추, 매화 등이 담긴 자루가 발견되어 당시 식생활의 유형이 밝혀진 사실도 고고학의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연이어 발굴된 옷, 신발, 장갑, 향주머니, 견직물 등 수십 점의 유물은 고대의 견직물이 거의 망라되어 있어서 당시의 직조와 방직의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차, 약에서 건강관리용으로 발전

 
마왕퇴 묘에서 출토된 죽간.

특히 소사단의(素紗單衣)라는 옷은 길이가 1m를 넘지만 무게는 불과 50g을 넘지 않는다. 이 옷은 실물로 전시되어 그 규모와 형태를 살펴 볼 수 있는데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비단으로, 섬세함이나 심플한 디자인은 우리가 입는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세련된 솜씨를 자랑한다. 이 얇디얇은 소사단의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솜씨가 분명하다. 한편 이 묘주의 관을 덮었던 백화(白畵)는 총 길이가 2.05m이며 상단의 너비는 0.92m, 하단의 너비는 0.48m로 T자 형태인데 상단에는 천상을 묘사하고 있고 하단은 다시 상·중·하로 나누어 상단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부인이, 중단에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하단에는 수중이 묘사되어 있어 이 묘주의 사후세계를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제후였던 이창의 묘인 마왕퇴 2호 묘에서는 다수의 문헌도 출토되었다. 이는 『노자』『주역』『전국책』『좌전』 등과 양생과 관련된 문헌으로 당시 철학, 역법, 의서, 천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특히 양생술과 관련된 방중술은 불로장생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황노학(黃老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진나라 때 유행된 양생술은 이 묘주가 생존했던 시대인 한 대에도 유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왕퇴 1호 묘와 3호 묘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유물은 ‘가일사(檟一笥)’ ‘가사(檟笥)’이라고 쓴 죽간이다. 가(檟)는 도(荼)로 차를 의미하는데 이는 한대에는 차가 음약물(飮藥物)이었으며 양생을 위해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죽간을 통해 마왕퇴 묘주가 살았던 BC160~ BC65 경에는 차를 상자에 보관, 유통되었다는 것으로 이런 형태의 차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마왕퇴의 죽간이외에도 BC 59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왕포의 「동약(僮約)」에 “무양에서 차를 산다(武陽賣荼).”라는 계약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가사(檟笥)’를 통해 차가 풍토병을 다스리던 음약에서 양생을 위한 차로 한 단계 발전되었던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도(荼)가 차(茶)라고 표기된 것은 이 마왕퇴 유적의 죽간이 발견된 후, 900여 년이 지난 후, 당 육우에 의해서이다. 결국 호남성 박물관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거대한 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귀국 길에 찾아간 악록서원(岳麓書院)은 송대의 사대 서원답게 우람하다. 이 서원의 명성은 주자(1130~1200)와 장식(1133~1180)이 벌린 ‘주장회강(朱張會講)’으로 유명하다. 회당에 모인 학인들, 열띤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던 주자와 장식, 당대의 사표(師表)였던 그들이 천하의 인재가 솟아나는 샘물처럼 모여들기를 바랐던 것은 ‘급천정(汲泉亭)’ 편액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느 시대인들 ‘급천정(汲泉亭)’의 의미가 퇴색되랴 만은 서원 깊숙한 곳, 황매의 고결한 분향이 오래 오래 남아 있기를….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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