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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기자명 신규탁
정치와 각 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서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일은 선거 때가 되기만 하면 의례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출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계라고 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깊은 산중에까지 찾아가 표를 얻기 위해 유세를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후보로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달라진 것은 불교가 일종의 이익단체처럼 정치인에게 교섭을 하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어느 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원장이 불교계 발전을 위한 부탁을 하는 방송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경전에서 배운 불교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석가모니 생애를 보더라도 그 분은 황태자로서 부왕의 뒤를 이어 세속의 임금이 되어 정치를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길을 버리고 진리를 전도하는 법의 왕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 이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석가모니를 추종하는 큰스님들이 스승 석가모니께서는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경전에 기록했던 것이다. 출가자들은 청산에 부는 맑은 바람으로 세속의 열정을 시원하게 하는 자들이다. 이런 이념과 이상을 잃어버린다면 정치권력 앞에 비굴해질 위험성이 있다.

선거전이 막판에 치닫다 보면 대권 후보 내지는 그들을 대신한 정당인이 사찰을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할 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가 있다해도 석가모니의 제자라면 당연히 스승의 정신에 입각해서 그들에게 진리를 전해야 할 것이다. 세속의 번뇌와 욕심으로 인해 생기는 많은 죄악의 실상을 깨닫게 해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정치지도자들의 교사노릇을 하는 눈 밝은 승려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 '만들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것이 있다. 제행무상이다. 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대통령도 만들어진 것이고, 정당도 만들어진 것이고, 정부도 만들어진 것이고, 국가도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도 정당도 정부도 국가도 모두 무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무상한 실상을 바로 보아 그것에 미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무상한 것을 쫓아가느라고 바른 가르침에 흠이 가게 해서야 되겠는가? 불법은 영원한 것이다. 자존심과 체통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정당인과 불교수행자는 기본 이념이 다르다. 정당인은 정권의 획득이 목표이지만, 불교수행자의 이상은 번뇌로부터의 해탈이다. 정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발전 방향을 잡지만 불교는 욕망의 해소를 통한 평화를 목표로 한다. 간혹 정치인 중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망각하고 제 욕심을 챙기기 위하여 불교계에 인위적 관리하기도 한다.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눈 밝은 불교 지도자가 나와 정치에 항거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있어왔다. 이것은 불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불교가 제갈 길을 제대로 가자는 운동이다.

티베트의 불교를 이끄는 승려들이 보여준 일련의 운동도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제 길을 바로 가자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 운동으로 비약시켜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불교도라면 불교적인 삶의 방식이 세상 구제의 가장 적절한 길이라는 것을 믿고 실천해야한다. 정치 유세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인의 길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걷도록 충심으로 권유할 자신이 없으면, 대권 후보자들에게 불교의 제반 문제를 부탁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길은 서로 다르다. 종교인에게 있어서는 종교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러니까 종교이다.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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