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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화가 잇케이는 왜 조선 승려를 그렸나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0.03.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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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정 민 교수, ‘조선표객도’ 첫 규명
대흥사 옥불-스님들 일본 표류할 때 인연
‘조선은 부처의 나라’…스님과 필담 등 묘사

 
일본 에도시대 말기의 화가 우키다 잇케이가 그린 ‘조선표객도’.

1996년 재일학자 이원식 씨는 일본 교토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표객도(朝鮮漂客圖)’를 비롯해 관련 시 2수와 편지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것은 19세기 에도시대 말기의 유명한 화가였던 우키다 잇케이(1795~1859)가 1838년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에는 여러 장면들이 묘사돼 있었다. 먼저 운룡문이 그려진 제단 위에 큰 옥불 부처님 1구와 양편으로 작은 부처님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에는 책상 앞에 불경을 펼쳐 놓고 고깔을 쓴 스님이 독경을 하고 있었다. 또 오른편에는 스님 두 명이 선 채로 대화하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왼편에 모자를 쓴 스님의 손에 붓과 종이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필담 장면을 표현한 듯했다. 이어 하단에는 뱃사공 두 사람이 편한 자세로 앉아 대화하는 장면으로 더벅머리 총각은 짚신을 신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고, 상투를 튼 사내는 손에 장죽을 들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 그림의 내용은 무엇이고, 우키다 잇케이는 왜 이 그림을 그렸던 걸까.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문헌과 해석」48호에서 『동사열전』, 『일본표해록』을 비롯해 관련 편지 및 화가의 제기(題記) 등을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조선표객도’에 얽힌 사연들을 규명해냈다. 논문에 따르면 이 그림은 해남 대흥사(대둔사)가 1817년 11월 25일 천불전에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경주 기림사에서 조성한 천불을 두 배에 나눠싣고 돌아오다가 768좌의 부처님을 실은 상선이 동래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일본으로 표류했던 사건에서 비롯된다.

당시 17명의 스님들을 포함한 일행이 며칠 간 폭풍 속에서 표류하던 중 11월 28일 구사일생으로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 닿을 수 있었다. 이후 나가사키 조선관으로 인계된 그들은 일본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 중 한명으로 훗날 『조선표해록』을 쓴 풍계 스님은 “일본 사람들이 다투어 맞이하여 집으로 데려가 술과 음식을 권하는데 은근하고도 다정하였다.…그 까닭을 물으니 ‘조선은 부처의 나라다’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때 우연히 나가사키로 놀러왔던 화가 잇케이도 조선관을 찾았고 서로 필담을 나누기도 했다. 또 ‘…세상에서 일찍이 큰 불법을 외웠나니/ 세모에 띠끌 마음 편안히 지나누나(世界曾念大佛法 暮歲塵情安然過)’라는 내용의 시를 얻기도 했다. 정민 교수는 ‘승려 17인 중 다만 2~3명만 대략 문자를 알아 필담을 나누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잇케이의 대화 상대는 인봉과 풍계 스님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당시 일본 혜공 스님이 “불상을 이곳에 봉안하고 눌러 앉아 승려생활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듯한 내용의 제안에 조선인 스님들이 “해주신 말은 고맙지만 어찌 정리에 맞는 일이겠느냐”며 정중히 사양하는 내용의 편지도 함께 소개했다.

 
대흥사 천불전 옥불. 일본에서 표류하다 돌아본 불상 등의 뒤에는 아직도 ‘일(日)’자가 적혀있다.

훗날 일본 막부의 외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해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강직했던 잇케이에게도 이때의 만남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년이 지난 1838년 11월 ‘무가무불가정’ 주인의 요청에 의해 그림을 그렸지만 표현이 섬세할 뿐 아니라 그 때까지도 필담 내용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 스님은 다음해인 1818년 6월말 768좌의 옥불 부처님과 함께 조선으로 귀국할 수 있었고, 8월 15일 천불을 대흥사에 봉안했다. 특히 이때 다산 정약용의 권유에 따라 불사를 주도했던 대흥사 완호 스님은 일본에 표류해갔다 돌아온 768분의 부처님 등 뒤에 ‘일(日)’자를 써서 표시해 두기도 했다. 실제 대흥사 천불전 부처님 중 일본에서 돌아온 부처님 등 뒤에는 지금도 날일(日)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일본의 유명화가가 그린 이 그림은 대흥사 불상과 스님들이 겪었던 기이한 인연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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