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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淸心] 고사리 장마와 선거

기자명 법보신문

비가 내린다. 장맛비가 내린다. 4월 봄에 무슨 장마냐고 하겠지만 제주에는 지금 장맛비가 한창이다. 처음 제주에 와서 접했던 4월 장마는 너무나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4월 제주 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다. 우악스럽게 퍼부어 대기만 하는 7월 장마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름이 장마이지 내리는 빗줄기와 산허리를 오가는 안개구름은 너무나 소박하여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4월 짙은 안개와 함께 한라산 언저리를 싸 감고 돌면서 뿌려주는 장맛비는 더없이 많은 자양분을 가득 담고 맛깔 나는 제주 고사리를 길러 내어준다. 육지 처녀들이 봄나물 캐러 들로 산으로 나아가면서 또 한해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펼쳐간다면 아마 제주의 아낙들은 봄 고사리를 꺾으려 산에 오르면서 또 정겨운 한해를 시작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제주사람들은 참 배타적이라고들 한다. 제주에 와서 그 말이 피부로가 아닌 폐부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 삶속에서 그 배타성은 스스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차디찬 역사의 산물이란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4·3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제주에 발을 들여 놓고 살 자격이 없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그저 지나치며 들리는 가십거리 정도로 여겼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끼게 되었던 4·3사건은 그 긴 세월 육지 사람들을 ‘육지 것들’이라 폄하하면서 경계하는 이유를 알게 해 주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우리들의 아팠던 시대의 부산물쯤으로 치부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그냥 묻어 두고는 제주는 영원히 이분화 된 외딴 섬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질 것이다.

선거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 지역마다 지역별 특색이 있겠지만 제주는 정당별 색채가 뚜렷하지 않다. 오죽하면 ‘이당저당 해도 궨당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궨당은 제주 방언으로 일가친지를 일컫는 말이다. 또 하나 제주도민의 민심을 끌어가는 중심에는 바로 4·3사건이 있다. 4·3은 이곳에서 궨당보다 무서운 집결력을 가지는 것 같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가 4월 9일 이었는데 결과는 4·3에 대한 정당별 기본 입장으로 극명하게 갈려서 결국 야당의원들이 모두 당선되었다. 물론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4월 3일 전후의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그 누구도 4·3사태가 아직까지 제주의 의식을 대변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불자들의 집결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 정권 초기에 발발한 불교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그간 정치적 입장을 잘 표명하지 않으려 했던 많은 불자들이 분명하게 입장을 정립하면서 결집되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낯설게 어느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지 묻곤 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언제나 출가사문임을 핑계로 중립을 지키는 듯 한 표정을 짓는 것이 것만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당(佛黨)을 민다’라고 하며 웃고 넘긴다.

제주의 낭만적인 고사리 장마가 한라산의 아름다운 정경을 감추고 깊은 운무로 길을 잃게 하듯이 선거라는 깊은 늪에서 인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극단의 언어가 난무하는 게 사실이다. 지금이야 말로 부처님의 혜명을 이은 스님들의 직관력이 더욱 요구되어지는 때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에는 경쟁과 갈등보다는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자비와 육화와 화쟁의 높은 사상을 지니고 실천하는 후보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어 부처님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더욱 잘 펼쳐질 수 있도록 열열 불당(佛黨) 당원으로서 축원해 본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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