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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기자명 법보신문


글__김병규 그림__이영원



찬바람이 제 세상을 만난 듯 거들먹거리며 골목골목을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이 즈음이면 건널목이나 버스 정류장이 가까운 곳곳에 붕어빵 장수가 나타났습니다. 손수레에 빵틀을 얹고, 비닐 바람막이를 엉성하게 두른 붕어빵 가게는 따뜻한 옛 정취를 물씬 풍겼습니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붕어빵에서는 구수하면서 달콤한 냄새가 미지근한 온기와 함께 퍼져 나왔습니다.

그 앞을 목도리를 칭칭 감은 목을 움츠린 사람들이 외투 주머니에 깊이 손을 찌른 채 빠른 걸음으로 오갔습니다.

이미 구워져 가지런히 놓인 붕어빵들이 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세요. 저를 좀 봐 줘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알은척하고 돌아보며 엷은 웃음을 보여 주는 사람이 어쩌다 있을 뿐이었습니다.

붕어가 흙탕물에서 한 모금의 산소를 얻기 위해 입을 뻐끔거리듯, 붕어빵도 인정에 목말라하며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들머리에 있는 버스 정류소 옆, 그곳은 동사무소 앞이자 상가 맞은편이기도 했습니다.

거기 큰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붕어빵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붕어빵 장수는 말을 못하는 장애인 부부였습니다. 이들이 노점상들마다 눈독을 들이는 노른자위인 이곳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조그만 분식점을 하던 이 부부는 건물 주인이 부도를 내고 숨어 버리는 바람에 전세 보증금까지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이 딱한 사정이 신문에 실렸고, 그 기사를 읽은 시장이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이들은 얼마 전에 자기들을 속인 세상을 잊고, 그 일에 감사하며 열심히 붕어빵을 구워 팔았습니다.

가끔 그 앞을 지나는 보리 스님은 이 장애인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붕어빵집에 들르곤 했습니다.

보리 스님은 붕어빵을 볼 적마다 목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그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많이 팔았어요?'

합장을 하며, 보리 스님이 물었습니다.

장애인 부부는 똑같이 보리 스님을 흉내내듯 두 손을 모으며 합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못 듣지만 다 알아듣는다는 듯이.

정말 오늘은 장사가 짭짤했는지 구워 내놓은 붕어빵이 세 개밖에 없었습니다. '아, 맛있겠다!'

보리 스님은 붕어빵의 꼬리지느러미 귀퉁이를 떼어냈습니다.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어 먹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고소하고 맛이 있어요.'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었습니다.

보리 스님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 다섯을 다 펴 보였습니다. 붕어빵 다섯 개를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부인이 다시 손가락 다섯을 펴 보이며, '다섯 개 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확인이 되면 잘 익은 붕어빵을 골라 종이 봉지에 담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한 아주머니가 비닐을 들추며 들어왔습니다. 부부가 다 조용히 웃으며 손님을 맞았습니다. 보리 스님을 한 쪽으로 비켜서며 지리를 내 주었습니다.

'붕어빵 팔아요?'

'…….'

그들은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천 원에 몇 개 줘요?'

'……?'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리던 아내가 천 원 짜리 돈을 들어 보인 뒤 손가락 셋을 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이들 부부가 말을 못 듣고 못하는 줄을 알아챘습니다. '천 원에 세 개라고!'

보일 듯 말 듯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나서 손가락 다섯을 펴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확인하려는 듯이 또 거푸 손가락 다섯을 펴 보였습니다.

다섯 개 드려요?

스님은 고개를 저었다.

먼저 다섯손가락을 편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곤 왼손을 가져다 놓았다.

쉰 다섯 개나 ?

아내는 헷갈리는 듯 남편을 돌아보았습니다. 남편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내가 미안한 듯한 웃음을 머금으며, 아주머니를 향해 다시 손가락 다섯을 펴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손을 장애인 아내의 눈앞에 쑥 내밀더니, 몇 차례 거푸 폈다 오므렸다 했습니다.

눈이 둥그래진 아내가 왼손에 들었던 빵 주걱을 내려놓고, 손가락 다섯을 편 왼손을 들고는 오른손으로 그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오십 개나요?'

아주머니는 픽 비웃음을 흘렸습니다.

듣지 못하는 이들 부부에겐 상대의 웃음은 모두 '좋다', '그렇다'의 뜻이었습니다. 그만 신이 난 아내는 남편한테 손가락 다섯을 편 왼손을 돌려대고 그 옆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습니다. 남편의 손길도 바빠졌습니다.

아내가 보리 스님을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보리 스님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아주머니에게 미리 주라는 손짓을 보냈습니다.

익은 붕어빵 여남은 개가 쌓였습니다.

팔짱을 낀 채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빨리 안 주고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붕어빵 굽기에 정신을 쏟는 그들 부부는 아무 눈치도 차리지 못했습니다. 보리 스님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지켜보았습니다. 뭐라고 끼어 들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 참, 재수 없으려니까!'

아주머니는 입을 실룩이더니 힁허케 나가버렸습니다.

그제야 보리 스님은 그 아주머니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굽고 있는 붕어빵은 미리 주문한 보리 스님의 몫으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얼마 뒤, 아주머니가 가 버린 것을 안 그들 부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리번거렸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얼굴에 슬픈 빛이 어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바꾸고서 스님을 돌아보았습니다.

새삼스레 확인하려는 듯 아내가 손가락 다섯을 펴 보였습니다.

'스님, 다섯 개?'

보리 스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눈을 더 크게 뜨며 바라보았습니다. 보리 스님은 늘 붕어빵 다섯 개를 사고는 이천 원을 내고 갔던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보리 스님은 먼저 다섯 손가락을 편 오른손을 들어 보였습니다. 그 엄지손가락 옆에다 붕어 입처럼 동그랗게 한 입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그러고는 조금 틈을 두고, 역시 다섯 손가락을 편 왼손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 손짓에 잿빛 장갑을 낀 손이 썩 잘 어울렸습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던 그들 부부의 눈이 등잔불만큼 커졌습니다. 아내가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숫자 '5'를 두 번 그렸습니다.

'쉰 다섯 개나?'

보리 스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이 손가락을 죄다 편 두 손을 들어 보였습니다. 아내도 따라 두 손을 들며 보리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얼굴에 잔잔한 웃음 띈 보리 스님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합장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부부는 다섯 손가락을 편 두 손을 '짝짝' 부딪치며 기뻐했습니다.

이 많은 붕어빵을 어떻게 하나?

이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붕어빵이 좀 생겨서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왔어요.

얼마 뒤, 보리 스님은 붕어빵이 가득 든 종이 봉지 둘을 포개서 가슴에 안고 그 가게에서 나왔습니다. 등뒤에서 장애인 부부는 두 손을 모아 서툴게 합장했습니다. 머리 위로는 싸락눈이 풀풀 날리고 있었지만 붕어빵 봉지가 따뜻하게 가슴을 데워주었습니다.

'이 많은 붕어빵을 어떻게 하나?'

보리 스님은 거리를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지 오랜 듯 학교 앞도 조용했습니다.

그 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종탑이 세워진 5층 건물의 맨 위층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유리창에 칸칸에 '승리교회'라는 글씨가 한 자씩 붙어 있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보리 스님은 그 건물로 갔습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데, 위층으로 다가갈수록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밝고 맑게 들렸습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성탄 축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제 더 올라갈 계단이 없었습니다. 보리 스님은 드디어 꼭대기 층 문 앞에 섰습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쉰 뒤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연습을 잠시 멈추고 쉬는 시간을 준 모양이었습니다.

여남은 아이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보리 스님에게 쏠렸습니다. 삽시간에 술렁거렸습니다. 아니,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술렁이었고, 교회 안엔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보리 스님은 조용히 합장했습니다.

'붕어빵이 좀 생겨서요……. 식기 전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왔어요.' 그 순간, 아이들한테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와! 와와!'

보리 스님은 맨 앞에 달려온 아이한테 붕어빵 봉지를 넘겨주었습니다.

저쪽에서, 전도사인지 주일학교 교사인지 모르지만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어른 몇이 보였습니다.

보리 스님은 그리로 몸을 돌려 다시 합장을 하고는 돌아섰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이들의 맑은 함성이 점점 더 크게 들렸습니다.





작가소개

김병규 님은 48년생. 대구교육대학 졸업. 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춤추는 눈사람'으로 등단. 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심심교환' 당선.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부문 우수상과 소천아동문학상, 해강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취재부장이며, 동국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동화집 『희망을 파는 자동판매기』,『다섯 게으름뱅이의 춤』,『나무는 왜 겨울에 옷을 벗는가』,『요리사의 입맛』,『열세 번째 민주의 방』,『고장』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영원 님은 49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4회 한국 어린이 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출판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동화 『마른풀의향기』(프뢰벨), 『밝음이와 어둠이』 (보림), 『해시계 물시계』(보림) 등에 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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