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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기억하는 문수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늘 정의롭게 살려던 강직한 스님”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불자들.

평소 스님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지인들은 문수 스님에 대해 “소신이 강하고 불의를 참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가진 진정한 수행자였다”고 기억했다. 1998년 중앙승가대 학생회장을 역임한 문수 스님은 재학시절부터 불의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품을 간직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을 직접 지도했던 유승무 교수는 “스님이 학생회장을 맡은 1998년 종단적으로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었던 시기로 중앙승가대도 그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그러나 학생회장이었던 문수 스님은 항상 대의를 좇았고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중앙승가대가 곧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문수 스님은 남을 배려하는 따뜻함을 잊지 않았다. 중앙승가대 김포학사 건설공사가 한창이던 1998년. 스님은 방학을 이용해 김포학사 공사 현장에 직접 나가 일손을 돕기도 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았기에 스님은 학생과 교수들에게도 후덕한 스님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문수 스님은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이후 수행납자로서 치열한 삶을 이어갔다. 문수 스님과 중앙승가대에서 함께 수학한 이후 줄 곧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군위 지보사 주지 원범 스님에 따르면 문수 스님은 선방에서 화두를 들던 중 전생부터 이어져 온 자신의 두터운 업장을 녹이겠다며 돌연 손가락 4개를 태우는 연지공양(燃指供養)을 하기도 했다.

원범 스님은 “문수 스님은 수행자에게 있어 안팍이 다르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미 그 때부터 스님은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았던 것 같았다”며 “스님의 그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후 2007년 9월 원범 스님은 군위 지보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문수 스님은 지보사에서 무문관 수행에 들어갔다. 하루 한 끼로 면벽 수행을 했으며, 간혹 원범 스님이 전해준 신문 등을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는 현실에 몹시 괴로워했었다고 원범 스님은 전했다.

문수 스님과 중앙승가대 시절부터 15년여 동안 인연을 맺어온 조계종 호법부 전 조사과장 지수 스님도 “문수 스님은 그 흔한 전화기나 휴대폰 하나 없이 지보사에서 은거하며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셨던 분이었다”면서 “그런 스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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