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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변명] 한 없이 부끄럽습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수경 스님 자리는 민중의 가랑이 사이
생명평화의 오체투지, 이제는 우리 몫

새벽 4시다. 가부좌를 틀었다. 생각이 나무 등걸에 걸친 달빛처럼 흔들린다.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삼보일배, 지율 스님의 단식,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자승자박 총무원,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명박산성 내 청와대 권력, 용산 참사와 4대강 유린, 죽음꽃놀이패 천안함, 노무현과 진보신당,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본디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나 티끌이 앉겠느냐는 육조 혜능 앞에서 이 웬 맴돌이 영상인가.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수경의 중심의 괴로움 때문인가.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못다 이룬 혁명가의 절망 탓인가.

새벽 5시, 핸드폰이 죽었다. 새들도 떠난 듯 조용한 새벽 강엔 검은 비만 내린다. 다시 빗장을 들어 마음을 잠근다. 무문이다. 신라의 달빛 월명사의 애절한 천년 각오가 뼈마디를 쑤신다. “생사의 길이 예 있음에 두려워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노라 어느 가을 이는 바람에 이예 저예 떨어질 꽃같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것 모르다니 아 미타찰에 만날 나는 길 닦아 기다리련다.” 눈물이 흐르고, 허공에 가득 찬 빛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여과 없이 포착한다. 안은 강물이고 바깥은 촛불이다.

여반장이라, 안은 촛불이고 바깥은 강물이다. 어두운 새벽 강 굵고 검은 빗줄기, 순식간에 큰 강물 되어 보와 강둑을 절단 내 버린다. 강은 천년세월을 보듬어 온 산은 넘지 못하지만 촛불 난에 두려워 쌓은 명박산성 쯤은 민중사 사료감도 아니어서 한숨에 훑어 버리는 것, 이 부질없는 권력을 무상이라 하지 않는가.

새벽 6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빗장을 열고 단 잠에 든 5살 시원이를 꼭 껴안았다. 아내도 눈을 떴다. 이제 집을 나서야 한다. 개문유하, 혁명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오만한 남성성을 혁파하고 포근한 여성성이 지배하는 역성혁명의 때가 왔다. 생명을 보듬는 큰 보살의 시대가 왔다. 생명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모든 제도를 폐기하고 온 생명이 만개하도록 설계하는 생명살림꾼의 시대가 왔다.

혁명은 생명을 한없이 보듬는 것, 온 몸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 따뜻하게 보듬는 순간순간이 바로 혁명이다. 어미 닭이 달걀을 보듬어 안듯, 병아리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우주를 온 몸으로 보듬어 안는 것, 혁명은 보듬는 것.

실상사 화엄결사를 수행하신 수경 스님, 스님은 한순간도 대접받는 중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저도 두렵습니다. 죽음이 두렵고, 죽임이 두렵습니다. 밑으로 기어 들어가신 스님, 이제는 나오지 마십시오. 민중의 가랑이 사이가 무문 아니겠습니까. 사실 스님은 한 번도 가랑이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언감생심 웬 권력입니까. 무릎 연골이 무너져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스님, 스님 자신이 공양이었습니다. 스님의 원력으로 우리는 서로 혁명가가 되어, 땅을 보듬고, 4대강을 보듬고, 스님을 보듬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떠난   부처의 길은 지금 여기 제가 떠나야 할 길,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정호 동물보호단체 카라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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