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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淸心] 듣기 싫은 세상의 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장마가 시작되었다. 제주는 언제나 계절에 있어서는 전국 선두를 달린다. 봄이 오는 소식이 그렇고 여름 장마이야기도 그렇다.

먼 인도 부처님 당시의 언어로 말하자면 우기가 시작 되었으니, 모든 스님들은 원행을 삼가고 한곳에 모여 수행 정진하여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선생은 스스로 가야산으로 들어가면서 한편의 시를 지었다.

스님네여, 청산이 좋다고 말씀들 하지 마오.
산이 좋다면 왜 자주 산 밖으로 나가시는가.
두고 보세요, 나의 뒷날 자취를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가지 않을 테니.

훗날 사람들은 이시를 ‘증산승(贈山僧)’ 또는 ‘입산시(入山詩)’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최치원 선생은 ‘산’을 거주지로 말했지만 의미는 분명 출가입산을 의미하고 있다. 당시의 급격한 정치 상황과 황폐해진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외면하지 못한 스님들의 세속 출입이 잦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스님들의 세속 출행은 계초심학인문에서도 간곡히 삼가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세간의 출입을 억지로 막지 않아도 출가자라면 그 누군들 깊은 청산에 안빈낙도를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고운선생은 마지막 퇴락한 왕조에 환멸을 느끼고 입산하며 느낀 감정이었겠지만 또 다른 많은 스님들의 입산은 단지 현 세파에 대한 지독한 부정으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우습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출가당시 너무나 즐겁고 재미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데 어쩌면 절망하고 입산하게 되었다고 해야 더 옳을 것만 같다. 출가당시 내게 세상은 더없이 완전한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세상에 대한 부정이 출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긍정 또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도 하는 게 분명하다. 한번은 담화를 나누던 한 참배객이 조용히 ‘스님, 세상 이야기는 안했으면 더 좋겠습니다’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모든 세상사를 잊은 듯 그저 달콤한 계절의 흐름이나 시류에 따라 피고 지는 꽃 이야기며, 다향(茶香)만을 나누며 살고 싶을 때가 한둘이 아니다. 더 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세상과 등지고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싶다가도 불교에 발을 담고 있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일들이 자꾸 발생하는 현실이 얄미워지기도 한다.

얼마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모 지역 기독교인들이 방문한 자리에서 ‘템플스테이가 운영되는 사찰 몇 군데를 다녀보니 너무 크게 짓더라. 그래서 더 이상 짓는 것은 곤란하며 새로 짓는 것은 못하게 하라는 지침을 줬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우리 문화를 홍보하고자 한 정성을 생각하면 막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사찰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외국인에게 비쳐질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템플스테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던 관계 부처 장관의 발언을 접하면서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마음이 너무 소아적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늘따라 지루한 장마에 세상을 향해 전할 수 있는 따스한 관세음보살의 눈빛을 우러러 닮고 싶어진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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