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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기자의 슬픈 자화상

기자명 법보신문

[기자칼럼] 권오영 기자
언론사 사주 재판 날 법원까지 들락
사주에 대한 맹목적 충성 경계해야

지난 1999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비리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중앙일보 기자들이 검찰 청사 앞에 일렬로 서서 “홍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쳐 세간으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의 돌출 행동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사주를 지키려는 과잉 충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언론계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중앙일보 기자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품격을 내팽개쳤다”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흔히 기자는 양심을 건 직업이라고들 한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에 대해 이해관계를 떠나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신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득 몇 해 전 중앙일보 사건을 다시 떠오르게 한 건 지난 7월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이날은 불교방송 이사장이자 조계종 총무부장, 부천 석왕사 주지인 영담 스님이 ‘자신이 운영했던 부천 스포피아의 직원 임금과 퇴직금을 미지급한 일로 조계종 유지재단 통장이 가압류된 일’을 보도한 본지 기자를 고소한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예정된 재판 시간보다 조금 앞서 도착한 기자는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가 멀리 벽 뒤에 숨어 머리만 내민 채 빼꼼히 훔쳐보는가 하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등 수상쩍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곧 그들이 낯익은 교계 기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 기자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잠시 의아했지만 이들이 법원에 온 이유를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서는 부천 스포피아 사건과 관련해 진실을 규명해 줄 증인이 출석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당사자는 당시 부천 스포피아 관장이었던 영담 스님으로 지금 불교방송 이사장이었다.  

영담 스님은 1999년부터 2005년 12월까지 관장으로 재임하면서 부천 스포피아를 운영해 왔다. 부천 스포피아에서 급여도 받았고 수익금도 자체적으로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2005년 12월 부천 스포피아를 폐쇄하면서 집기류 등을 매각한 돈도 조계종 복지재단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담 스님은 재판 과정에서 “(나는) 부천 스포피아를 경영했지, 운영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시설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매각 결정 이후 발생한 직원 임금과 퇴직금은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까닭에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 줄 증인이 출석해 진실을 규명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결국 이들 기자들이 법원에 온 이유는 ‘누가 증인으로 참석하는지’를 확인해 보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담 스님의 지시에 의해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주를 염려한 기자들의 충정에 의한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물론 기자들도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은 단순히 생계보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어 분명한 자기 소신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굳이 ‘사회의 목탁’을 운운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교계 기자가 공중파 방송에서 “상대방의 목을 따야 한다”고 발언해 불교계 위상을 실추시킨 스님을 추종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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