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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해설] 3.존재론적 사실의 증득

기자명 법보신문

증도가는 도덕적 권선징악 노래가 아닌
마음의 존재론적 활연관통의 증득 노래

증오의 도인과 해오의 철학자와의 차이를 기본으로 하여 지금부터 우리는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의 본론을 음미해 보련다. 본문의 해석은 성철스님의 번역본을 기본으로 삼는다. 탄허스님의 번역을 참조할 때에는 그 출처를 밝히겠다. 원문은 원칙적으로 생략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인용한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으니, 무명의 한 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영가대사가 증오한 것이 세수 31세였고, 열반에 드신 것이 39세였다고 하니, 대사는 근기가 최상근이어서 불지견(佛知見)에 일찍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불지견에 이르기 위하여 오랜 각고의 세월을 통한 참선이 필수적이라는 말을 여기서는 할 필요가 없겠다. 영가대사는 천태교종의 수행공부가 이미 무르 익어 교종의 공덕이 바로 선종의 공덕과 한 몸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일려준다. 그는 천태교종의 교학을 열심히 수행했겠다. 그가 『증도가』의 시작에서 ‘배움이 끊어진 하릴 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라고 읊은 것은 도인의 구경각(究竟覺)에 이른 도인의 결론이지 무명중생이나 과학적, 또는 철학적 구도자의 길에 들어선 이가 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위의 저 말은 구경각에 이른 도인의 신비한 증언이지, 탐구자의 문제의식이 풀어낼 수 있는 해오의 차원이 아니다. 해오자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하고 악을 멀리하고자 하는 도덕의식이 두드려져 항상 구경의 진리를 배고파한다. 아마도 공자가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들어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구절이 곧 진리에 대한 가장 열열한 그리움을 말하는 것이겠다. 무명중생이 그토록 간절하게 갈망하던 도의 진리가 대의단(大疑團)의 붕괴와 함께 실존적으로 체득되자마자, 도의 존재가 스스로 출현하면서 도를 찾던 의식주체가 사라지고 그 의식이 존재의 세계로 변한다. 해오가 실존적 차원이라면, 증오는 존재론적 차원이라고 읽어야 하겠다.

증오의 차원에서 일체의 존재가 그대로 다 여실한 도의 모습이지 특별히 더 보태거나 빼야할 것이 없다. 우리는 여러번 불교의 도는 사실의 도이지, 인간이 첨삭해야 할 가감승제(加減乘除)의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적 진리는 곧 우주적 자연적 사실이다. 이것을 화엄학에서 이사무애(理事無碍)라고 부른다. 불교의 도를 너무 사회도덕적 차원에서 훈계하고 설법하는 것은 증오의 차원이 아니다. 이 점이 사회도덕의식으로만 전적으로 무장된 유교와 기독교와 다른 점이다. 유교와 기독교는 당위의 윤리도덕의식으로 덮혀 있다. 그래서 인간학적(인간중심주의적)이다.

한국불교는 조선조 500년의 유교의 영향으로 유교의 눈치를 보느라고 지나치게 인간학적, 도덕윤리적 성향을 노출하는 업을 띠고 있다. 증도가는 도덕윤리적 권선징악의 노래가 아니고, 마음의 존재론적 활연관통의 증득을 노래한 것이다. 인간을 도덕적 선의 집행자나 중심으로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을 하나의 마음으로 회통하고 경영하는 허심을 신비한 증오의 힘으로 여긴다.

증오의 신비는 자연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개별적인 단일성(특수성)이 우주의 자연성을 엮어나가는 만(卍)자와 같은 대대법적(待對法的)인 새끼꼬기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가장 큰 사실로 바라본다. 불교의 도는 신앙을 지고의 가치로 요구하는 기독교와 달리 이사무애적인 사실보기를 원한다. 불교적 사실과 과학적 사실의 차이가 무엇일까?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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