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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해설] ⑤ 아기와 바보의 공통점과 차이점

기자명 법보신문

존재는 지적 쟁취나 도덕의 대상 아니라
자연스럽게 눈뜨면 되므로 아기도 이해

우리는 증도가에서 도의 증득인 증오(證悟)가 존재론적 의미에서 해석되어야지, 문제의식의 해답으로서의 해오(解悟)의 수준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했다.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이해는 존재자적인 의미에서와 달리 대상적 차원을 이미 초탈하여 어떤 대상의식을 떠난 상태를 지칭한 것이다.

어린 아기와 바보의 공통점은 다 같이 대상의식을 안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대상을 보고서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이 대상의식이다. 우산을 들고 나오는 타인들을 보고서 비가 자주 오는 계절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즉각 느끼는 것이 대상의식이다. 그러나 천진한 어린 아기와 바보는 이것을 모른다.

그러나 아기와 바보의 차이는 즉각 드러난다. 아기는 문자그대로 아기고, 바보는 아기가 아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지만, 바보의 웃음처럼 괴이하지 않다. 바보는 겉으로 나이 들어 보이나, 판단수준이 영 유치하다. 둘 다 대상의식의 결핍에서 공통적이나, 바보의 결핍은 아주 모자라는 이미지를 안겨줄 뿐이다. 증오의 도인과 무지하고 무식한 까막눈도 겉으로 보면 서로 유사해보이나, 속으로 아주 다르다.

증오의 도인은 순진하여 어린아기 같지만, 속으로 다 안다. 무지무식한 어른은 세상의 지나 갔음을 겉으로 얼굴에 알려주고 있으나, 아무 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살아간다. 순진한 아기 얼굴의 도인은 세상을 알지만, 어떤 인위적 의지적 노력의 결실이 그려놓은 그런 흔적이 없다. 이것은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의 얼굴모습처럼 온 몸에 의지의 노력을 반영하는 울퉁불퉁한 근육을 의지의 흔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모습과 달리, ‘신라의 미륵반가사유상’처럼 전혀 그런 의지의 흔적을 깨끗이 지운 모습과 같다 하겠다.

순진한 아기의 얼굴에는 어떤 노력의 흔적이 안보이기에 그 아기가 그만큼 매력적이듯이, 아기를 닮은 도인의 얼굴도 어떤 인위적 노력의 근육미도 없기에 그 도인은 그만큼 자연스럽다. 이런 상태를 영가대사는 『증도가』의 서두에서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絶學無爲閑道人)이라고 읊었다. 어떤 목적의식 없이 세상을 음유하듯 노니는 도인의 경지가 표현되어 있다. 어떤 목적의식은 대단히 대상의식이 분명한 상태를 뜻한다.

목적의 대상을 집중적으로 의식해야 목적의 지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목적의식에 투철한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눈의 동자가 선명하고 뚜렷하다. 바보는 절대로 그런 목적의식을 지닐 수 없다. 어린 아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목적의식은 강렬한 소유의식, 강인한 집착의식을 품고 있다. 목적은 동시에 집착을 뜻한다. 그 집착이 우리를 소유의 노예로 이끈다. 도인은 인생을 어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집착으로 헐떡거리지 않는다.

이와 함께 증오의 도인은 망상을 제거하려는, 그리고 또 진리를 추구하려는 목적의식도 없다. 우리는 보통 망상을 없애고 참을 추구하려는 구도자의 정신을 사명의식에 가득찬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높이 받든다. 그런 인간은 기껏해야 해오의 수준까지는 올라간다. 그러나 증오의 주인은 존재의 경지다. 존재를 이해하기 위하여 유식한 지식의 정복이나 선의지의 도덕적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영역은 그런 지적 쟁취나 도덕적 정복의 차원이 아니다. 존재자와 달리, 존재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개념도 필요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되므로 어린아기도 말없이 즉각 이해한다. 망상도 참/거짓과 선/악을 구별하는 의식을 가진 이에게 등장한다. 도인과 같은 어린 아기는 사람이 되면서 등장하는 어떤 개념적 분별의식 없이 풍요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의 선물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 더불어 놀이한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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