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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 해설] 7. 애매모호성과 불교의 깊이

기자명 법보신문

번뇌의 실존적 체험없이 보리증득 불가능
불안의 고통 못 느끼면 적요 신선함도 몰라

불교가 얄팍하게 지능적인 장난을 치는 것을 알음알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까닭도 우리가 지난 회에 보았듯이 불교의 반지능주의에 기인한다 하겠다. 그 동안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의 문명은 지능위주의 사고방식을 중시하여 왔었다. 심리적 지능이 보다 더 정신화한 것을 우리는 지성이라 부른다.

지성이 아무리 세련화됐다 치더라도, 지성은 역시 지능의 산물로서 이성의 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성에는 과학기술적 이성과 사회도덕적 이성의 두가지 역할로 나누어진다. 서양의 철학은 신학과 과학기술적 이성의 약진을 키웠고, 동양의 유교철학은 사회도덕적 이성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켜 나갔다.

이성의 철학은 자연적 본능의 계열에 속하지 않고, 사회적 지능의 계열에 귀속하기 때문에, 이성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다. 따라서 이성은 인간중심주의의 철학에서 빛난다. 여기서 신중심주의는 철학적으로 인간중심주의와 다르지 않다.

인간적인 이성은 공통적인 사고의 특징을 함의하고 있다. 그 하나는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같은 것을 다른 것과 아주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은 예컨대 진/위와 선/악을 극단적으로 대립시켜 위가 아닌 진, 악이 아닌 선을 선택하는 것이 이성과 지성의 사명인 양 인간의 정신을 세뇌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런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은 자연히 진리와 선의 자기동일성을 아주 강조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언제나 진리이지 결코 허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고, 도덕적 선도 반도덕적 악과 결코 뒤섞일 수 없다. 선도 영원한 자기동일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이성철학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런 양자택일법과 자기동일성의 법칙은 불교적 사고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류사는 이런 이성의 법칙 위에 과학기술과 사회도덕을 수립하여 왔었다. 또 그것이 문명의 준칙이 되어 왔었다. 그런 점에서 불교적 사고방식은 문명의 주류적 흐름과 그 준칙에서 일탈된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간혹 동양사에서 불교가 정치적 권력과 우호관계를 맺어서 역사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된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불교적 사고방식과 그 철학이 확연히 이해되었기라기 보다 오히려 종교적인 신앙의 힘을 통하여 구복의 혜택을 받으려는 저의가 더 강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앞에서 논의되었듯이, 불교는 철학적으로 양자택일의 선명성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동일성의 확실성을 고집스럽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성의 철학에서 보면, 불교적 사유는 너무 애매모호하다. 애매모호성이 불교적 사유의 깊이고. 사회적 지성의 철학이 그동안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탁월한 불교사상의 특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위가 함께 혼융되어 있고, 선악이 공존하는 것을 그대로 여여하게 인정하는 불교의 세상보기의 사고방식은 인간사회의 이성적 인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거듭 나타나는 진실이다. 긴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선악이 선명하게 나누어졌는가? 긴 시간의 세월 속에 진리는 변치 않고 진리로 계속되어 왔는가? 그렇다고 불교는 진위와 선악이 동일하다는 억지를 농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르지만, 개별적인 별개의 입장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상관적인 관계에서 다른 것이다.

흔히 불가에서 ‘번뇌 즉 보리’라는 말이 있다. 번뇌와 보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번뇌를 실존적으로 체험해 보지 않은 이는 보리의 증득이 불가능하다. 불안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적요(寂寥)의 신선함을 또한 알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불교의 깊이가 논리적 선명성의 확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성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상기시켜준다. 세상은 사실적으로 애매모호하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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