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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떠도는 한국불교 ‘주변인들’

기자명 법보신문

며칠 전 학인스님 한 사람이 찾아왔다. 지난 4년 동안 강원 졸업하기만 학수고대했는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조언을 구하러왔다. 돌아와 절 살림을 맡아주길 바라는 은사스님의 간청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그러자니 원래 계획했던 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 같고, 이래저래 마음을 정하지 못해 답답해했다.

처음 출가할 땐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겠지만 그들이 부딪쳐야 할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한평생 사판승으로 매어 사는 것도 내키지 않고, 자유롭게 내 길을 가고 싶지만 왠지 불안하고.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 안정된 환경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종단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수행자들에 대한 배려가 적지 않다.

 

수많은 선원에서 납자들을 외호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신도님들도 스님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개개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누구도 책임져주는 사람이 없다. 안거 중에도 납자들은 해제 철에 짐 둘 곳을 걱정해야 하고, 공부하는 스님들은 당장 공부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이렇게 몇 해를 불안하게 보내다가 이도 저도 안 되겠다싶어 짐을 싸서 나라 밖으로 나간다.

이 수행처에서 몇 철, 저 나라에서 몇 년, 그렇게 세월을 보내지만 돌아올 의사가 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으니까. 외국에 나가보면 그렇게 떠도는 스님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누군가의 경제적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그들의 이국생활이 자신들의 수행을 위해서나 한국불교를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신라시대에도 많은 스님들이 당으로, 인도로 떠났다. 지금처럼 유학파 스님들은 귀국 후 신라사회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은 오히려 신라 땅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원효 스님과 신라를 떠난 후 끝내 돌아오지 않은 원측 스님이다.

 

유학을 포기한 뒤 원효 스님은 상당기간 신라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전국의 뛰어난 승려를 초빙한 백고좌법회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육두품 출신에 해외유학파도 아닌 그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이었을 것이다. 후에 그는 자발적으로 비주류의 삶을 살아갔다. 태종무열왕과 요석공주와의 인연도 떨쳐버리고 그는 저자거리를 떠돌았다.

한편, 원측 스님은 당시 세계의 수도 장안에 모인 기라성 같은 학승들 사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소수민족 출신으로서 그는 끝내 당나라 승려들의 텃세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서명파는 학문적 이유인지 비학문적 이유인지 분명치 않으나 규기파에 의해 밀려났다. 그런데 왜 그는 신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세계적인 학승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을 텐데 신라 승려들은 그가 돌아오길 원치 않았던 걸까? 어찌된 일인지 몰라도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불교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지만 그들은 당시 신라사회에서 주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구촌 곳곳에 떠도는 한국스님들은 이 시대의 주변인들이다. 그들은 원효와 원측처럼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의 불교는 이 시대 어딘가 존재할지 모를 원효와 원측을 또 다시 주변으로 밀어내고 있지 않을까?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들의 불교에 묻는다.

▲명법 스님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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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 스님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운문사 승가대학장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미국 스미스 칼리지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다. 현재 운문사 및 서울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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