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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중요한 건 메시지

기자명 법보신문

최근 들어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스님들이 더러 찾아온다. 반가워서 이것저것 정보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또 대학에서 공부하는 후배나 제자스님들에게는 졸업 후 외국에 나가서 더 공부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뚜렷한 목적 없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찾아오는 스님들도 있다.

 

그럴 땐 먼저 왜 영어를 배우려는지 이유를 물어본다. 보통 영어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라든가, 절에 찾아온 외국인들과 대화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듣게 되는데, 그러면 다시 묻는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으냐고.

영어를 배우겠다는 스님들이 많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내가 학위 과정을 이수할 때만해도 절 밖에서 공부하는 것을 승려의 본분사를 벗어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 절집에서 영어 잘하는 스님이 대접받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래서 막연하게 영어를 배우겠다는 스님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외국어 실력이 하나의 권력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시류가 절집에도 흘러들어온 것 같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게다가 승려로서 입지조차 서지 못한 초심자들이 몇 년 동안 그 어떤 승가의 보호막도 없는 곳에서 겪게 될 혼란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정말 영어만 잘하면 한국불교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지만 승려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않은 채 외국어만 배우려는 태도는 찬성하지 않는다.

얼마 전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역사를 보는 안목도 흥미로웠지만 인터뷰 내용 중 특히 공감이 갔던 것은 그만의 독특한 외국어 교육관이었다. 이탈리아와 일본의 혼혈인 아들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살 수 있는 남자로 키우기 위해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배우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먼저 그리이스어, 라틴어를 배우게 한 뒤 영어를 배우게 했는데, 그런데 그가 외국어 교육보다 더 강조한 것은 모국어인 이탈리아어 교육이라고 한다. 아무리 외국어를 공부해도 모국어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외국어는 도구일 뿐, 실제로 외국인이 열심히 귀 기우려 듣는 것은 그 나라 말을 줄줄 지껄이는 사람이 아니라, 말은 서툴러도 무언가를 전달할 것이 있는 사람 쪽이라는 것이다.

 

참 옳은 말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보아도 그렇다. 때로 내 말이 서툴러도 미국사람들이 그 말을 끝까지 들어준 것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것, 즉 비구니로서의 수행 체험과 공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불교적 안목 때문이다.

▲명법 스님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회에는 수천 명의 서양 사람들이 모여든다. 달라이라마 스님의 영어가 유창한 편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법문을 듣고 감동하는 이유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 때문이다. 영어가 유창하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느냐, 즉 메시지이다.

외국에 나가 외국어를 습득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행자로서 중심을 확립하는 일이 아닐까?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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