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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생활 · 무르익는 신행…은퇴란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 새해특집
  • 입력 2011.01.04 16:22
  • 수정 2011.01.04 16:38
  • 댓글 0

인생 2막을 연다 시니어불자 파워

평균나이 80세, 전국 최고령밴드 ‘호수실버밴드’


젊은 시절 접은 ‘딴따라 꿈’에 도전

 

 

▲실력파 최고령 밴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호수실버밴드.

 


연꽃마을 산하 일산노인종합복지관 호수실버밴드가 평균나이 80세의 전국 최고령밴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72세부터 88세까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고령의 구성원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호수실버밴드에는 여타 복지관에서 취미생활 동아리로 운영되는 어르신 밴드와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실력파 음악인들이 모인 밴드라는 것. 2001년 5월 창단 이후 노인여가 경연대회에서 두 차례나 대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전국실버밴드 경영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젊은이들 못지 않다. 5명의 어르신들은 매주 두차례 악보가 가득 든 캐리어를 끌고 무거운 악기를 짊어진 채 양평, 파주, 서울 등 곳곳에서 복지관을 찾아 연습에 임한다.


밴드의 구성원 중 가장 맏형은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는 정인섭(88) 어르신. 아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도 독주가 가능할 만큼의 수준급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85세의 문형철 어르신은 키보드 담당으로, 과거 kbs 악단 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실력파다. 단장 박정근 어르신은 올해 84세, 해군군악대 출신으로 트럼펫을 맡고 있다. 작곡 발표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음악적 기초가 탄탄해 실버밴드의 화음을 조율하는 등 음악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리고 미모의 기타리스트 지연영(76) 어르신은 국내 최초의 여성밴드 세븐시스터즈 창단멤버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조병진 어르신이 72세로 밴드의 막내,  여고시절의 밴드 경험을 살려 드럼을 맡고 있다.


이 범상치 않은 다섯 어르신들의 공통점은 바로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해왔다는 점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다 퇴직 후에도 연주가 하고 싶어 밴드에 동참했거나, 다른 직업에 종사하며 음악을 취미로 해오다 은퇴 후에야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두 가지 경우다. 호수실버밴드는 철저한 연습을 기반으로 실력을 가다듬는 것은 물론, 장애인복지관이나 노인요양원 등 요청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연주를 한다. 실력파라는 입소문이 나자 한해 평균 2~30회 가량은 외부 공연에 나설 만큼 요청도 많다.  


이들에게 호수실버밴드는 젊은 시절 못 이룬 꿈의 실현이자 평생을 함께해 온 음악의 회향에 다름없다. 때문에 어르신들은 항상 연습하는 곡, 항상 연주하는 곡에 만족하지 않는다. 조금 더 새로운 곡과 참신한 기법, 꾸준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발전을 꾀한다.


단장 박정근 어르신은 “밴드를 하면서 젊은 시절보더 더한 열정을 느낀다”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고 그들의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는 날까지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고 발원한다”고 말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폐암 극복한 신동춘 원로시인


“다시 얻은 삶 벽암록 해석에 바칠 것”


▲신동춘 원로시인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기고 보니 이 생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시를 쓸 수 있는 종이와 맑은 공기가 있다면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지요. 하루하루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6년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 35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도 세련된 감성으로 ‘어느 날’, ‘꽃비내리는하늘’, ‘속벽암록’ 등의 시집을 잇따라 발간하며 주목받아 온 신동춘(80) 원로시인. 그는 한국 6~70년대를 풍미한 주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이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현대시인협회 이사 소임을 맡고 있는 대표적인 문인이다. 1987년 동국대 선학부에 다시 입학해 석사학위를 딸 정도로 불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지대하다.


신동춘 시인은 퇴직을 1여년 앞둔 1996년 무렵. 폐암으로 큰 수술을 하고 생사의 고비를 겪었다. 가만히 병원에 누워 여생을 보내길 거부한 그는 치료 후 천안으로 내려와 선문대 교수로 다시 교편을 잡았다. 강의 제목은 ‘시와 사람과 인생’, 공기 좋은 곳에서 평생을 사랑했던 시를 강의하다 보니 어느새 몸이 회복됐고, 그는 다시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암투병 이후부터 써내려간 작품만 시집 세권, 산문집 세권 분량이 모였다. 이와 함께 시문학적 어구로 벽암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주목 받았던 시집 ‘속벽암록’의 재판본 발간도 준비 중이라고. 


“젊음은 힘이 있지만 늙음은 지혜가 있다고 하지요. 젊은 시절 시와 불교에 대한 열망이 더없이 강렬했다면, 지금은 내 생명과도 같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껴요. 매일 매일이 새로운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니 더없이 행복할 뿐이지요.”


그에게 시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시작에 다름없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71세 국제포교사 엄기준 불자

 

“늦깍이 포교사 된 지금 진짜 살맛 느껴”


▲엄기준 불자
조계종 국제포교사 문화교류부장이자 올해부터 감사 소임을 맡게 된 엄기준 국제포교사. 그는 올해로 67세다. 그러나 실제 나이는 주민등록상의 나이보다 4살이 더 많은 71세, 한창 국제포교사로 활동하기엔 많은 나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교계 외국인 관련 행사에서 그의 밝고 환한 웃음과 수준급의 영어실력을 계속해서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그 나이를 의심하게 된다. 화성 용주사 사찰문화재 해설 봉사와 외국인들을 위한 조계사 안내 봉사를 비롯해 이주민 관련 행사에는 빠짐없이 나타나 기획과 통역을 담당하는 등 외국인들에게 불교를 알리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서는 그의 열성적인 활동은 국제포교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국제포교사 자격을 취득한 것은 불과 2~3년전, 사실 그는 늦깍이 포교사다. 반평생을 국방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은퇴한 후인 8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불교공부를 시작, 동산불교대학에서 포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만해도 대단하다는 칭찬이 잇따랐지만 그는 잇따라 국제포교사에 도전, 13기 국제포교사가 됐다.


“세계화 시대에 불교를 알리는 일이야 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포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불교를 제대로 알리려면 외국어가 필수지요. 그래서 국제포교사에 도전했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퇴직이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기회가 된 셈이지요.”


엄기준 포교사는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지난 반평생보다, 자유롭게 외국인들과 교류하며 불법을 전하는 지금이 진짜 살아 숨 쉬는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남우조연상 김희라 배우

 

“연기 할 때 살아있음을 다시 느껴”


▲김희라 배우
“제가 아직 살아있네요. 세월이 가도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이의 가슴 속에 계속 살아남겠습니다.”
지난해 10월29일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김희라(68) 원로배우가 영화 ‘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거동이 불편한 몸임에도 당당히 시상대에 오른 그는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소감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김희라 원로배우는 남성적인 이미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2000년 잇따른 사업 실패와 뇌경색 투병 등으로 연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희끗한 머리카락과 왜소해진 몸, 예전과는 다소 달라진 모습으로 관객들의 앞에 다시 섰다. 사람들은 영화 ‘시’에서 강노인 역으로 출연한 그를 보며 무르익은 연기에 감동했으며, 재기에 성공한 그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과 호탕한 성격은 여전하다.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는 눈동자도 그대로다.
김희라 원로배우는 “힘든 시간 가장 간절했던 발원은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사람의 삶 자체가 바로 ‘연기’이기 때문에 연기는 평생, 죽는 날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새롭게 주어진 역할과 맡게 될 역할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기는 타고난 재능에 치열한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2011년에는 가장 하고 싶고 그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하기 위해 차기작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연기를 하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김희라 원로배우. 연기를 향한 열정이 있는 한 그의 삶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예 40년 심재영 서예가

 

“칠십 넘으니 수행 기쁨 비로소 깨달아”


▲심재영 서예가
한국 전통서예의 대가로 알려진 묵선 심재영(76) 서예가. 36세에 붓글씨를 시작한 그는 올해로 서예인생 40년을 맞았다.


반평생 매일 밤낮으로 해 온 붓글씨지만 “아직도 붓을 잡는 매순간마다 행복이 충만함을 느낀다”는 심재영 서예가는 “나이가 들고 붓과 함께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비로소 서예를 진정으로 알게 된 듯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붓을 잡는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가 됩니다. 종이와 붓을 마주하고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교의 수행과도 일맥상통하는 서예의 정신입니다.”


일흔 여섯,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의 강의 스케줄은 언제나 빼곡하다. 외부강의가 없는 날이면 그의 필명을 걸고 운영하는 ‘묵선서예’에서 회원들에게 직접 붓글씨를 가르친다. 4년 전부터는 전국비구니회장 명성 스님과의 인연으로 중앙승가대에서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덕분에 매주 한번은 부처님 전에 엎드려 참회하고 기도할 기회를 얻었다”며 인자한 미소를 전했다.


바쁜 와중에도 짬이 나면 사경을 한다. 금강경 사경을 가장 좋아하지만 반야심경과 보현행원품 사경도 지속적으로 행해오고 있다. 그렇게 완성한 사경작품은 대부분 보시한다. 그에게 서예는 평생 수행의 방편인 동시에 작품을 보시하고 포교를 실천하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붓이야 말로 제 평생 도반이지요. 부처님이 주신 재능으로 수행하고 보시, 포교까지 실천할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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