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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중]

기자명 법보신문

“증도가, 밤중에 횃불 만난 느낌”

 

▲20세까지 읽은 책목록을 기록한 서적기.

 

 

성철 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동서고금을 막론한 철학서를 탐독하며 지내던 중 20세를 넘기면서 신병요양을 위해 지리산 대원사를 찾았다. 이때까지 불교와 인연이 없던 스님은 여기서 당시 한용운 스님이 발간하던 잡지, ‘불교’를 접하면서 화두공부를 알게 됐다. 스스로를 ‘다독주의자’라고 했던 스님의 불교인연 역시 책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렇게 책을 통해 선(禪)을 알고 스스로 ‘무’자 화두를 든 스님은 그곳에서 대혜 종고 스님의 ‘서장’을 보았다. 이어 영가 현각 스님의 ‘증도가’를 읽고서는 짙게 드리운 안개가 걷히듯눈앞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스님은 훗날 이때의 심정을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로지 책에 의지해 혼자의 힘으로 화두를 든 청년 이영주는 효당 최범술(1904∼1979) 스님의 권유로 해인사에 첫 발을 디뎠고 일부 스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지 고경 스님의 호의로 1924년에 선원으로 확장된 퇴설당에서 참선 정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36년 3월3일 25세에 범어사 조실 하동산(1890∼1965)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출가했다. 다음해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동산, 용성, 운봉 스님 문하에서 공부한 것을 비롯해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고, 1940년 29세에 금강산 마하연에서 하안거를 난 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黃河西流崑崙山(황하서류곤륜산,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日月無光大地沈(일월무광대지심,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 도다), 遽然一笑回首立(거연일소회수립,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靑山依舊白雲中(청산의구백운중,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라는 오도송을 읊었다.


이후 청담, 우봉, 도우 스님 등을 도반으로 수행하며 1947년 봉암사 결사를 앞두고 양산 내원사에서 정진할 때 훗날 수많은 책을 소장함으로써 다독주의자가 되는 인연을 만난다.


어느 날 요즘 말로 ‘절친’에 해당하는 청담 스님으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서울 사는 거사 한분이 경전과 어록에 밝은데, ‘나보다 불전(佛典) 실력이 나은 스님이 오면 경전과 어록들을 다 주겠다’고 한다니 함께 가서 한번 만나 보시지요”하는 내용이었다. 총림을 만들어 운영하려면 불교 서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스님은 “세속에 그렇게 해박한 거사가 있나”하는 호기심과 “얼마나 많은 경전과 어록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까지 더해져 그를 만나기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종로 세검정 근처에서 만난 이는 김병룡 거사. 그는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반야경전을 비롯해 수많은 경전 이야기를 해박한 지식을 덧붙여 풀어놓았다. 이에 속으로 감탄한 스님은 그의 이야기 중에 언급되지 않은 유식학을 강의했고, 또한 이에 감탄한 김 거사는 “오늘 이렇게 선대로부터 물려받고 귀하게 모은 책들의 주인을 만나 소원을 풀었습니다”라며 주저 없이 책을 성철 스님에게 내주었다.


당시 김 거사가 기증한 책은 대장경 뿐만아니라 중국에서 발간된 선종 어록 등 3000여권의 희귀한 불서와 목판본 등이었다. 스님은 이 책을 자운 스님과 도우 스님의 도움을 받아 결사 예정지인 봉암사로 옮겼고, 이후 항상 이 장서를 안고 살았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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