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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완역’이 주는 교훈

기자명 은정희
동국역경원에서 드디어 고려대장경을 완역하여 금년 3월에는 완간된다고 한다.인류사에서 가장 뛰어난 사상내용을 담고 있는 불교전적에 우리 후학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그러한 작업을 위하여 그일에 종사한 분들의 오랜 세월의 인고(忍苦)를 생각할 때 절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결실에 대한 평가는 무조건 박수만 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바로 생각보다 심각한 오역의 문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원효저술의 번역에 미력하나마 몸 담아온 필자가 절실하게 문제로 여기고 있는 점은 오역 없는 번역을 하기 위해선 그 기초작업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비달마구사론』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구사론 전반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전제되지 않고는 제대로 구사론 번역이 이루어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일본인들의 국역일체경(國譯一切經)을 보면 그 방면의 전공학자가 세밀한 주석을 붙여서 그 책을 번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우리 한글대장경의 구사론 번역에 비해 너무 대조적이다.

둘째, 고려대장경은 물론 우리 고승들의 저술은 한문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문에 대한 기초 실력이 탄탄해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 한문실력은 불전(佛典) 이전에 외전(外典-유가, 도가의 전적)에서 그 실력을 닦아 놓아야 할 것이다. 소위 문리(文理)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노력이 쌓인 뒤의 결과인 것이다. 또 문리뿐만 아니라 어떤 저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저술에서 인용하고 있는 외전 내지는 불전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원효가 섭렵한 노장, 논어, 그리고 전거하고 있는 불전 등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원효의 이론을 정확히 따라 갈 수 없다.

셋째, 더 나아가서 번역이 우리시대에 보다 더 널리 읽힐 수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 번역에 대한 해설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양쪽의 철학서까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솔직한 바람은 우선은 제대로 된 직역이나마 완성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번역사업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다 광범하고 지속적인, 다시말하면 범국가적, 범종단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우리 고전번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으로는 불교이외의 분야에서 민족문화추진회나 정신문화연구원에 약간의 지원이 있었고 불교쪽으로는 동국역경원에 미미한 지원이 있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계획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나마 번역일을 맡아온 일세대가 사망 또는 고령화 되어가고 있는 이때 불전 번역을 위한 인재양성이 선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번역을 기대해 보았자 그것은 모래 위에 성 쌓기다. 흔히 우리가 5000년 문화민족임을 자랑하고, 원효와 같은 걸출한 사상가를 배출한 나라임을 자랑하기만 하고, 원효의 어떤 사상이 어째서 어떻게 훌륭한가를 밝히는 일은 태부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기초작업, 즉 올바른 번역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되며, 그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일에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것임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이 어디로 갔는지 그저 조금 아는 것으로 반짝 과시나 하려고 하는 오늘의 세태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일본의 모로바시(諸槁) 한화사전(漢和辭典)을 만드는데 이름없이 결핵으로 죽은 사람이 1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사전을 모태로 하여 중문(中文) 사전, 한어대사전이 나온 것은 다 알고 있다.

정확한 번역은 불교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올바른 번역을 통한 올바른 이해는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필수적인 것이다.



은정희(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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