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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법보신문

3500미터 하늘허리에서 꽃 핀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자연환경은 혹독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능한 시기는 일년 중 고작 4개월. 그러나 그 짧은 여름동안 라다크의 자연은 경이로운 풍광을 펼쳐 보인다.

 

 

라다크는 첫 사랑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다가왔다. 그곳이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 중간 어디쯤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하던 내게 문득 라다크 여행을 제안한 사람은 대학 후배였다.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는 사전 답사를 위한 라다크행을 준비하며 동행을 권했다. 덜컥 따라 나선 것은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도라는 매혹적인 이름, 히말라야에 대한 동경,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히말라야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순례의 길이자 실크로드를 오가던 옛 카라반들의 무역로, 티베트 불교의 원형이 살아있다는 라다크를 직접 접해볼 수 있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라다크,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모든 첫 사랑이 그렇듯 기쁨과 희망, 놀라움과 두려움의 반복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찾아본다면, 아마도 어지간히 시간을 들여서도 라다크라는 지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지도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좀 더 범위를 좁혀 인도 지도를 놓고 보자. 그래도 마찬가지다. 지도상에서 라다크를 찾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라다크는 지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다크라는 말은 10세기 중반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던 라다크 왕조의 옛 영토를 중심으로 그곳에 형성돼 있는 독특한 문화권과 그 문화권의 영향 하에 있는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굳이 우리 식으로 비유하자면 영남, 호남 식의 표현정도가 아닐까. 물론 행정적 구분으로 라다크를 규정짓지 못할 것도 없다. 인도 최북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국경 분쟁으로 아직까지도 국경선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잠무-카슈미르주’의 동쪽 편이 라다크다. 서쪽은 카슈미르지역, 그 아래는 잠무지역이니 사실 잠무-카슈미르주라는 주명칭도 라다크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만하다. 주의 절반이 라다크 지역인데 왜 ‘라다크’라는 명칭은 쏙 빠졌는가 말이다. 이 점도 다 이유가 있지만 나중에 따져보자.


라다크 관련 정보를 찾으며 가장 먼저 접한 사실은 해발 3500미터라는 경이로운 숫자다. 옛 라다크 왕국의 수도이자 현재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의 해발 고도 역시 3505m. 이 숫자는 라다크 지역 전체의 평균 고도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 숫자를 좀 더 실감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산들과 비교해봤다. 설악산 1708m, 지리산 1916m,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한라산 1950m. 그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백두산은? 고작 2750m다. 고산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해발 2500m에서 무려 1000m나 훌쩍 더 올라가 버리는 곳이 라다크의 심장부다. 그러니 우선 고산병에 대한 준비가 절실하다. 고산병이 나타나면 극심한 두통, 구토와 함께 무기력감, 어지럼증 등이 동반되기 때문에 증상이 완화되기 전까지 정상적인 활동이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이번 일정 전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산병만큼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질 지경이다.


히말라야가 품은 고갯길의 땅

 

 

▲파미르고원에서부터 뻗어온 히말라야 산맥의 중턱. 라다크는 풀 한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거친 환경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작은 티베트다.

 


해발 3500m의 하늘 허리에 걸려있는 도시 레로 가는 방법도 만만치가 않다. 비행기를 이용한 항공로와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마날리를 거쳐 가는 육로가 대표적이다. 또 하나는 델리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잠무-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르로 간 다음 그곳에서부터 자동차를 이용해 서쪽의 레로 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때마침 스리나가르에서 불거진 이슬람교도들의 독립 시위로 이 지역 전체에 대한 출입 봉쇄, 그리고 출발 1달여 전에 발생한 사상 유래 없는 폭우로 대부분의 도로가 유실돼 이 길은 깨끗이 포기해야 했다. 일정을 감안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델리에서 레까지 단 1시간여 만에 날아가는 항공로. 가장 손쉽지만 이 방법은 해발 3500미터를 단박에 오르는, 십중팔구 고산병을 불러올 무모한 선택이다.


다행히 고산 등반 전문가들을 비롯해 나름 고산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고수들이 여러 가지 고산병 예방법을 제시해 놓고 있다. 약도 있고 민간요법 식의 고산 예방법도 다양하다. 이런 정보들을 한 가득 수집해 놓으니 3500m의 고산이 벌써 발아래 놓인 기분이다. 물론 이런 자만이 라다크 전역에서 무참히 깨지긴 했지만.

 

 

▲길가에서 만난 어린 스님은 이방인에게 스스럼 없이 사과 몇 알을 내민다. 그 미소가 라다크의 꽃이다.

 


어찌되었든, 고산이라는 두려움에 발목을 잡히기에 라다크는 너무도 매혹적인 대상이다. 우선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는 ‘하늘도시’라는 낭만적인 별명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라다크 왕국의 수도였던 레는 17세기 셍게 남걀 왕조에 의해 건설됐다. 옛 왕국의 수도답게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는 반쯤 무너진 왕궁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또한 레는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오가던 카라반들의 주요 거점지로 라다크 왕조는 이 교역을 통해 번성을 누리기도 했다. 티베트 고원으로부터 전해진 티베트 불교의 원형이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돼 있고 라다키로 불리는 라다크 사람들의 경이로운 신심도 가슴 벅찬 감동이다.


하지만 라다크의 자연 환경은 이런 낭만적인 상념을 한 방에 날려 보낼 만큼 혹독하고 극단적이다. ‘고갯길의 땅’이라는 지명의 뜻처럼 라다크 지역은 히말라야산맥과 라다크 산맥으로 둘러싸인 고갯길 그 자체다. 고산에 위치한 좁은 계곡은 춥고 건조하다.


육로를 통한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길이 열리는 시기는 여름인 6월부터 9월까지의 4개월 뿐. 손바닥만한 여름 한철이 지나고 나면 고갯길 땅의 즐비한 고개들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오도 가도 못하는 그냥 고개가 돼 버린다. 겨울철 기온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고 연중 강수량은 100㎜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다크 전체 면적 약 97,000㎢ 가운데 사람의 거주가 가능한 지역이 고작 0.5%라는 사실이 이러한 라다크의 환경을 대변해 준다.


이 같이 혹독한 계절만 아니라면 그 ‘손바닥만 하다’는 여름 4개월간 라다크의 자연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희박한 공기 탓에 더 푸르게 빛나는 하늘은 빈틈없이 눈부시다. 그 하늘은 만년설을 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히말라야의 산맥들과 맞닿아 서로 희롱하며 이방인의 눈을 현혹시키고, 풀 한포기 없이 황량한 산은 숨 막힐 듯 날카로운 영상으로 각인된다. 그곳에서 별처럼 빛나는, 별 보다 더 많은 탑과 사원들은 이곳이 붓다의 땅임을, 라다키들의 땅임을 끝없이 일깨워준다.


라다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호지 여사의 명저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다. 호지 여사는 라다크가 세상을 향해 처음 문을 열었던 1975년부터 라다크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 오래된 세상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기록했다. 호지 여사는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 사회의 대안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와 하나된 사람들

 

 

라다크 어느 마을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의 맑은 미소. 그 순수함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이번 여정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이미 관광객들의 수중에 떨어져버린 지금의 라다크에서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호지 여사의 말처럼 누구도 그 곳에서 원하는 모습만 보고, 원치 않은 모습을 외면하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림동화나 모험 소설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흥미진진한 체험만을 생각한다면 나그네는 3500m의 고갯길에서 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거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지켜온 문화, 그리고 그 속에 살아있는 불교와 그들의 신심과 어설프게라도 조우하기 위해 이방인은 그들 가까이에 좀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출발에 앞서 라다크 사진 한 장을 접했다. 푸른 하늘이 한량없이 넓은 가슴을 열어 굽이치듯 펼쳐진 땅을 감싸 안고 있는 라다크의 속살을 보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하늘이 정말로 이 땅을 사랑하는 구나.’


사람들에게 내주고 싶지 않아서 하늘 가까이 끌어 올리고, 사람들이 이 땅에 욕심을 품지 못하도록 더없이 가혹한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라다키들은 하늘만큼 이 땅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늘만큼 이 땅을 사랑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이 땅을 자신들의 일부처럼 일구어 왔다. 이제 하늘이 사랑한 땅, 그 땅을 닮은 거친 손발의 사람들을 만나러 출발한다. 이 글은 라다크, 그 경이로운 자연과 문화에 대한 기록이자 그 곳에서 만났던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늦은 감사의 인사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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