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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하]

서재에 보관한 장서만 7000권

 

▲스님이 평생 책을 보던 책상.

 

 

성철 스님은 봉암사 결사 이후 제방에서의 안거를 거쳐 1955년 파계사 성전암에 철조망을 두르고 앉아 10년간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스님은 그 10년 동안 김병룡 거사로부터 기증 받은 책을 독파하는 것은 물론, 다른 책과 자료들까지 구해 읽는 학구열을 보였다. 또 본인이 장서를 보던 중에, 혹은 간혹 찾아오는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새로운 주장을 담은 책이나 자료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꼭 구해서 읽고야 말았다.


특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분야가 불교교리와 관련된 것들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 불교적 인식론을 담고 있는 물리학적 근거, 전생에 대한 실험을 담은 자료 등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국내외 정세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타임’지를 보고, 세계적 시사 화보집인 ‘라이프’지를 구해서 읽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 외국 자료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자주했고, 그 가운데 일본에서 주문한 ‘남전대장경’은 부산항에서 하역 중 인부들의 실수로 바다에 빠져 수장되자 기어이 다시 구해서 보기도 했다.


스님의 이러한 책 읽기는 훗날 해인총림 방장 시절 행한 백일법문과 이후 정곡을 찌르는 법문의 밑거름이 되었다. 또 물리학과 수리학 관련 서적을 탐독했던 스님은 백일법문 때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공즉시색을 설명했을 정도로 불교와 다른 학문의 접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중들도 윤회를 방편설로만 생각하고 안 믿는다”며 ‘죽음 뒤의 삶’ 등 윤회 관련 책을 섭렵했다.


이렇게 읽은 많은 책을 보관한 곳은 스님이 스스로 ‘장경각’이라고 이름붙인 서고이자 서재였고, 대략 7000여권의 책이 꼽혀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서고의 열쇠를 시중드는 상좌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 관리했을 만큼 아꼈다. 스님은 “청담 스님과 자운 스님이 책을 본다고 해놓고는 돌려준 적이 없다. 책은 이렇게 빌려주면 돌려주지 않으니, 아예 빌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도 책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스님은 손수 짜서 이용하던 서고의 나무책장이 뒤틀려 잘 열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열쇠를 내주면서 제자들에게 책 심부름을 맡겼다. 이때 책에 일련번호가 없음에도 책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몇 번째 책장 몇 번째 칸 몇 번째 책을 갖고 오라는 식으로 심부름을 시켰다. 그동안의 독서량과 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만한 대목이다. 상좌 원택 스님은 은사 성철 스님이 찾는 책을 찾지 못해 여러 차례 혼이 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스님의 서재인 장경각 책장이 망가짐에 따라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백련암에 고심원을 지었으나, 채 다 짓기도 전에 주인의 육신은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책은 스님 입적 후 백련암에 별도로 마련한 장경각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다.


그렇다면 성철 스님에게 책을 보는 시간과 공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상좌 원택 스님은 “화두 수행을 통해 체험을 먼저 한 이후에 조주록과 운문록 등 조사 스님들의 어록과 경전을 보면서 스스로의 앎을 검증한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성철 스님에게 있어서 책은 깨달은 이후 불교가 무엇인지를 이론으로 확인하는 방편이었고, 서재 장경각은 ‘돈오돈수’의 깨달음을 검증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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