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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스님 [상]

기자명 법보신문

소박하지만 대쪽처럼 강직한 선승
방학 때면 마을 아이들에 한문지도

오는 2월18일은 우리 노스님의 79번째 생신이다. 지난해 6월말 내가 병원법당 소임을 맡은 뒤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 하루라도 우리 노스님을 잊은 날이 있었으랴.


새로운 일들과 맞닥뜨릴 때 난 늘 노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떠올렸고, 하루하루 노스님께 부끄럽지 않은 손상좌가 되려고 애썼다. 심지어 암수술을 받는 순간까지 나는 “언제나 수행자다워야 한다”는 노스님의 당부를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만큼 우리 노스님은 출가자로서 나의 이상이었다.


내가 노스님을 처음 뵌 것은 지난 1991년 12월4일이다. 대학 2학년 때 출가를 결심했지만 당시 눈물로 막아서는 부모님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출가할 수 있게 된 나는 그만큼 훌륭한 스승을 간절히 원했다. 그 무렵 조계사에서 만난 한 눈 맑은 스님이 소개해 주신 분이 바로 공주시 유구읍 동해사의 설호 노스님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스님의 첫 인상은 영락없는 선객이었다. 소박하지만 대쪽 같은 강직함이 엿보였다. 나는 노스님께 상좌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노스님은 상좌보다 손상좌가 되라는 말씀하셨고 나는 결국 노스님의 뜻을 따라 맏상좌인 석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러나 노스님을 시봉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은사 스님이 다른 사찰을 돌봐야 했던 까닭에 나는 이후 7년간 노스님과 단 둘이 지낼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노스님은 자비스러웠지만 당신 자신에겐 세상 누구보다 엄격했다. 새벽 3시 예불이 끝나면 어김없이 죽비를 치고 좌복 위에 앉았다. 어떤 경우라도 낮에 눕는 일은 없었고, 고무신이나 속옷 빨래 한 번 부탁하는 일이 없었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했기에 반찬이라곤 김치, 깻잎, 간장고추지가 전부였지만 음식을 가리는 일이 없으셨다. 모든 생활의 중심은 오직 ‘공부’였다. 행자인 내게도 쓸고 닦고 여자짓 말고 공부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또 직접 쇳송(종송)을 가르쳐주셨고 틈틈이 초발심자경문도 일러주셨다.


그렇게 석 달쯤 지난 어느 봄날 오후 노스님께선 감나무 아래서 내게 화두를 주셨다. 호리병 속에 어린 새 두 마리가 커서 나올 수 없게 됐는데 병을 깨지도 새를 죽이지도 않고 꺼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꼭두새벽부터 노스님과 마주 앉아 그 새를 꺼내려 안간힘을 기울였다. 허나 그 새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세월도 더불어 깃털처럼 더불어 흘러갔다.


노스님은 말씀이 거의 없으셨고 별다른 일상의 변화도 없었다. 풀을 뽑을 때나 포행을 하실 때나 늘 빈틈이 없었고 화두가 스님 곁을 떠나지 않는 듯 했다. 문득문득 내가 저 연세가 되도 저토록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싶었다.


1993년 초 나는 노스님을 떠나 김천 청암사 강원으로 갔다. 그러나 방학이면 곧바로 절에 돌아와 사찰 불사를 도왔다. 또 방학 때마다 어린이와 중고생을 위한 불교학교를 열었다.


노스님은 아이들에게 한문을, 나는 영어를 가르쳤다. 시골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였다. 뿐만 아니라 노스님은 가난한 절 살림에도 매번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을 선뜻 내놓곤 하셨다. 그렇게 강원을 졸업하고 불사가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나는 7년 만에 처음으로 노스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할 수밖에 없는 일을 벌였고, 그로 인해 종아리까지 맞는 일이 일어났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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