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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생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부처

기자명 법보신문

중생이 생각 바꾸면 부처란 가르침은
도덕이나 엄숙한 선언 아닌 사실 자체

한국인들은 너무 지나치게 초탈적인 공의 도리와 세속적인 색의 도리를 나누고, 출가와 재가를 너무 분별한다. 이런 생각이 한국불교를 암암리에 지배하기 때문에, 입으로는 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말하지만, 기실 상구보리를 모색하고 수행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상구보리를 찾다가 끝내 하화중생을 제대로 실천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상구보리가 한없이 멀고 도달점이 끝없이 까마득한데, 언제 상구보리를 졸업하고 하화중생을 할 것인가 생각하면, 기약 없는 수행인것 같고 공부가 한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가대사의 ‘증도가’는 그런 기약없는 공부의 길을 단념시킨다. 하기야 영가대사가 나이 30여세에 이미 ‘증도가’를 지었으니, 젊은 나이에 아무리 상구보리를 철저히 해도 그것을 다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영가대사의 ‘증도가’를 공부하면서 우리의 신행생활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금강경’에 나오는 사상(四相=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탈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중생상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생상의 집착의 원인은 아상의 껍질을 지나치게 짙게 지니고 있음에 그 원인이 있다. 중생상을 탈피하는 일은 교종이 가르치듯이 점진적인 수행의 결과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 깨달은 보살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교리상으로 중생이 보살이 되는 것도 까마득한 일인데, 하물며 부처가 된다는 것은 아예 실행불가능해 보인다. 이것은 보통 불자라면 문득 갖게 되는 알아차림인데, 인사말로 불자들끼리 ‘성불하세요’를 그리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철학을 하면서도 불교를 먼저 멀리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또 불자가 된 다음에도 부처님 가르침인 ‘중생인 내가 바로 부처라는 말’을 실감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중생인 나를 위로해주는 덕담 수준으로 얕게 이해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증도가’를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영가대사의 ‘증도가’는 확실히 말한다. 세속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중생이자 동시에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라는 것이다. 이것은 덕담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사실이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부처라는 것은 어떤 이상적인 경지를 읊은 것도 아니고, 도덕윤리적인 당위의 세계를 말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현실적으로 우리가 부처라는 것이다. 부처가 되기 위하여 무슨 특별한 기적이나 힘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세수를 하듯이, 그렇게 얼굴을 닦으면 되는 것이 부처되기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의 마음자리를 부처의 마음자리로 마음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중생의 마음이 이익을 좋아한다고 비도덕적이고, 부처님의 마음은 전혀 이익과 무관한 고답적인 의리의 마음이라고 여겨서 안된다. 부처님과 중생이 다 이익을 좋아한다. 다 이익을 좋아하는 점에서 중생과 부처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부처님은 자리이타적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중생은 이기배타적으로 이익을 좋아할 뿐이다. 이익은 도덕적인 의리와 불가양립적인 세속성의 부정한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되고, 모든 생명의 마음이 욕망하는 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형효 교수
왜냐하면 이익은 모든 우주적 생명이 자신의 생명력을 다 꽃피우는데 도움이 되는 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 본질적으로 이익을 선호한다. 중생이 생각의 틀을 바꾸면 부처라는 가르침은 도덕적이고 엄숙한 선언이 아니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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