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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사에서 출가한 혜해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수정 2020.06.06 05:28
  • 댓글 0

“신계사서 남은 여생 보냈으면…”

신계사 복원 기원법회에는 해방 전 신계사 산내암자인 법기암에서 출가한 혜해 스님이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형재 경주 흥륜사 선원장을 맡고 있는 스님은 80 노구에도 불구하고 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108배를 하며 신계사 복원을 간절히 서원했다. 다음은 혜해 스님과의 일문일답이다.

출가 사찰에서 법회를 봉행한 감회가 어떠십니까.
-반갑고 즐거울 뿐입니다. 지난해 7월에 신계사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참배만 했지 이렇게 법회를 볼 수는 없었지요.

해방전 신계사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944년 스물넷의 나이로 9개월간 법기암에서 살았습니다. 법기암은 본찰에서 십오리 정도 떨어져 있지요. 유점사에서 해방을 맞아 그해 10월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로 다시는 못 오는 줄 알았지요. 법기암에는 20여명의 비구니가 살고 있었는데 본사에는 잘 내려오지 않아 신계사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문수암 보훈암 미륵암 지장암 관음암 등 산내 암자가 무척 많았어요.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네요. 특히 미륵암은 규모가 매우 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터가 어디였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탑은 많이 부서진 것 같고, 그때는 이렇게 훼손되진 않았거든요.

일본군들의 횡포는 없었나요.
-만세루 누각에서 학생들과 식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대동아 전쟁에 임박해 있던 시절이라 신계사에서도 보국대에 나갈 사람들을 훈련시키곤 했지요. 20세 안팎의 어린 청년들을 3일 정도 훈련시켜서 데리고 갔었지요. 전쟁에 끌려가면 모두 죽던 시절이라 일본이 패망하기를 바랄 뿐이었지요. 또래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이 끌려가면 함께 따라 가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앞으로 소망이 있으시다면.
-지난해 다녀간 이후로 줄곧 어떻게 하면 신계사에서 남은 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다음에 어떤 계기로든 꼭 다시 오고 싶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신계사 복원불사의 기공식과 낙성법회도 볼 수 있겠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서…. 여기에 토굴이라도 하나 짓고 살다가 이생의 연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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