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응 스님 [중]
관응 스님 [중]
  • 법보신문
  • 승인 2011.03.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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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것”
▲스님은 후학들에게 ‘선가귀감’ 탐독을 권했다.

관응 스님은 모두가 인정하는 대강백이면서도 선(禪)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아 현대 한국불교 선승 1세대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이어진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의 6년 결사는 진정한 수행자의 모범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스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직지사 조실로 후학을 제접하던 때는 80의 노구임에도 어린 대중들과 함께 수행하고 공양하기를 즐겼다. 당시 대중들이 노승의 편의(?)를 위해 공양을 별도로 마련하자, 스님은 “저놈들 나쁜 놈들이야. 나를 왕따 시키려고 해”라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또 법당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신도들이 말릴 때면 “불성이 살아 움직여 나오는 소린데 그것을 억제하지 말고 놔두라”며 어른들을 말렸다.


이러한 일화는 스님의 수행 정도와 대중을 대하는 애틋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에 대한 스님의 생각은 확고했다. 스님이 곁에 두고 보던 ‘성유식론 불교대계’ 4권을 어느 법사에게 주자, 한 스님이 ‘왜 책을 아무에게나 주느냐’고 따지게 된 일이 있었다. 이때 스님은 “책이란 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것이다”라며 항의를 일축하기도 했다.


제자들에 따르면 스님이 가장 가까이 했던 내전은 ‘선문염송’이었다. ‘선문염송’은 고려의 승려 혜심(慧諶, 1178~1234)이 1226년에 수선사에 있으면서 불조의 염송 등을 모아 편찬한 선문공안집(禪門公案集)이다. 책은 위기에 처한 국가의 안녕을 빌고 불법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종과 관계되는 각 문헌에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 편찬했다. 옛 화두 1125칙과 여러 조사의 염(拈)·송(頌) 등 어록을 수집해서 만들었고, 뒤에 제자인 각운(覺雲)이 347칙의 화두를 첨가하여 1472칙으로 내용이 늘어났다. 책에서 보여주는 화두의 주인공은 고승·대덕이 대다수이지만 국왕·대신·행자·비구니·소녀 등 각 계층이 그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언어·생활·풍속을 이해하는 데 참고로 삼을 수 있으며, 화두를 제시한 사람 중에 신라인이 많이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스님은 이 ‘선문염송’을 곁에 두고 보면서도 상좌들에게는 서산대사가 지은 ‘선가귀감’을 보도록 권했다. ‘선가귀감’은 선종과 교종 양종 사이의 이견이 심하고 일반 대중이 불교의 진의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선·교의 정의, 선문5종(禪門五宗)에 관한 설명, 선 수행에서의 주의사항 등을 기술해 놓음으로써 불자들이 수행의 귀감으로 삼도록 한 책이다. 당시 서산대사는 책머리에 수행자들의 태도가 부처님 당시와 다름을 에둘러 질타하며 수행의 근본으로 삼을 것을 당부했었다. 따라서 관응 스님이 이 책을 제자들에게 권한 배경에는 출가수행자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불법을 배우고 실천하는데 게으르지 말 것을 경책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유식삼십송’을 즐겨봤던 스님은 법문할 때나 상좌들을 대할 때면 ‘홀연히 고삐 뚫을 곳이 없다는 소릴 듣고, 몰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집이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라는 경허 스님의 오도송과 선시를 들려주기도 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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