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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흔적과 무흔적

기자명 법보신문

공이라는 것은 무흔적의 존재 방식
중생은 흔적만 생각해 모양에 집착

지난 회에 이야기된 바와 같이, 여래는 어떤 규정도 정의도 불가능한 무흔적의 존재이다. 무흔적의 존재는 곧 공(空)과 다를 바가 없다. 공이라는 것은 무흔적의 존재방식을 말한다.


지금 여기 내 방 안에 컴퓨터가 있고 전등이 있고. 책들이 놓여 있다는 것은 비어 있는 공간 안에 어떤 흔적의 현상들이 나타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흔적의 현상들은 어떤 흔적도 없는 무(無)의 공간인 공을 배경으로 해서 가능하다.


그 무의 공간이 없다면, 흔적들의 나타남과 그림이 성립하지 않는다. 마치 흔적들의 현상은 비어 있는 공의 바탕을 배경으로 해서 성립하는 공의 무늬와 다를 바가 없다 하겠다. 어떤 무늬도 없는 공은 곧 어떤 흔적도 없는 무흔적의 존재양식에 다름 아니다. 이 무흔적의 존재양식이 바로 여래요 부처다.


무흔적의 존재방식은 태어남도 없고, 태어나지 않음도 없다. 태어난 흔적의 현상은 흔적의 사라짐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나 무흔적의 공에는 그런 이중 행위가 적용되지 않는다. ‘증도가’의 구절을 계속 읊는다.


“누가 생각이 없으며, 태어남이 없는가. 진실로 태어남이 없으면, 태어나지 않음도 없나니. 기관목인(機關木人=나무로 사람모습을 만들어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움직이게 한다는 인형극의 일종이라 함)을 불러 붙들고 물어보라. 부처 구하고 공덕 베풂을 조만간 이루리로다. 사대(四大=地水火風)를 놓아버려 붙잡지 말고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흔적이 없는 여래의 공(空)은 흔적도 없으려니와 흔적의 사라짐도 없다. 생사의 흔적도 없고, 무정(無情=무생물)과 유정(有情=생물)의 구별도 없다. 말할 줄 모르는 목석같은 목인도 분별적인 생각도 없고 태어남도 없는 경지를 증득한 이라면, 바로 여래의 공(空)에 직입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철 큰스님의 번역해설과 탄허 큰스님의 것이 뉘앙스에서 아주 조금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철 큰스님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음도 없는 공의 도리는 무정물과 유정물의 차이를 만들지 않고 다 일심(一心)의 근원으로 여기기 때문에, 나무장승(木人)이 노래하고 돌여자(石女)가 춤을 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나무장승이나 돌여자는 무흔적인 공을 배경으로 나타난 어떤 흔적의 무늬이기 때문에, 공이 없다면 무늬가 나타날 리 없겠다. 중생은 공의 힘을 모르고, 흔적인 모습만 생각하기 때문에 늘 어떤 모양에 집착해 버린다. 예컨대 나무장승은 나무장승일 뿐이고, 돌여자는 돌여자라고만 바라본다. 중생은 나무장승과 돌여자가 서로서로의 흔적을 차이 나게 하는 연관성이 있는 줄 모른다. 나무장승과 돌여자가 서로 차이나기에 나무장승과 돌여자가 그렇게 다른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는 것을 중생은 모른다. 차이가 나는 것이 서로 연기법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중생들은 모른다. 그래서 나무장승과 돌여자를 각각 따로따로 떼어서 생각한다.


나무장승과 돌여자가 자기 것을 고집하면서 지니고 있는 실체로 보기에 중생은 나무장승과 돌여자가 서로서로 ‘타자(他者)의 타자(他者)’로서 존재한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물은 이 세상에서 다 타자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김형효 교수
타자의 타자는 나무장승은 타자인 돌여자의 타자로서 존재한다. 돌여자가 없다면, 이것은 돌여자가 아닌 나무장승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모든 흔적은 이처럼 다른 흔적인 타자의 흔적으로 성립한다. 모든 흔적은 스스로의 것을 지니지 못하고 다른 것의 차이로서 존립한다. 이 이치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법이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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