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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계(戒)

기자명 법보신문

악행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자발적 도덕행위
무조건 지키기보다 올바르게 지키는 게 핵심

계학(戒學)은 수행하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근본수행, 또는 삼독을 다스리는 바른 수행으로서 계정혜(戒定慧) 세 가지 배움 가운데 첫 번째다. 흔히 계는 악행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자발적인 도덕적 행위인 반면에 율(律)은 교단의 강제적 규율로 타율적인 법률에 비유된다. 수행하는 대상에 따라서 5계, 10계, 250계, 348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지난 호에서 팔정도(八正道)의 핵심은 ‘올바른(正)’의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올바른은 선(善, wholesome)한 또는 건강한 의도, 동기를 의미한다. 불선(不善, unwholesome)하고 불건강한 의도로 지켜지는 계는 마치 무조건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고(敎), 그 가르침이 실제로 피교육자를 성장시키는지(育), 아니면 반대로 역효과를 일으켜서 도리어 성장을 방해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선하고 건강한 의도와 동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정신특질 가운데 탐욕, 화, 어리석음, 질투 등과 반대되는 고귀한 정신들, 즉 자애, 연민, 사랑, 용서, 인내, 책임감, 내적 조화로움 등 자신과 타인의 행복과 성장을 가져다주는 영적 특질들을 촉진시키고 배양하고자 하는 의도와 동기를 말한다.


반면 불선하고 불건강한 의도와 동기는 탐진치 삼독에 바탕을 둔 계행을 의미한다. 또한 4종류의 자아의식, 즉 아만, 아애, 아견, 아치를 밑바탕에 깔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낮은 차원의 동기에 의해 지켜지는 계는 자신과 타인을 위해 궁극적으로 아무런 유익함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보조국사가 계를 지키고자 할 때는 ‘선지지범개차(先知持犯開遮)’, 계를 지키고 파하고 열고 닫을 줄을 먼저 알라고 했겠는가.


치유적 관점에서 불선하고 불건강한 의도에서 행해지는 계는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신체적 괴로움과 병을 유발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계행을 통해 칭찬과 인정을 구하고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은 무의식적 화와 적개심으로 채워지게 된다. 또한 그들의 내면은 자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미움과 비난, 자만으로 출렁이게 된다. 그래서 불선한 의도로 계를 지키는 이들은 자애로움, 연민, 친절함, 겸손, 등의 고차원적 정신특질들이 결여되어 있다.


한편, 선하고 건강한 의도로 지켜지는 계는 정신-신체적 기쁨과 성장을 유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계를 지키고, 범하는 의도와 동기는 온통 자신과 타인의 유익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 계는 타자의 웰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선한 의도로 계를 지키는 이들은 평화롭고 따뜻한 온기를 풍긴다. 그들에게서 풍겨나는 계의 향기는 세상을 정화시키고 보는 이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상대적이고 연기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진실되고 유익한 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시간과 공간, 상황과 조건에 맞게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 계는 무지와 집착의 산물일 뿐이다. 물처럼 흐르지 않고 고착된 계는 향기가 없다. 부드럽게 휘지 않는 딱딱한 계는 무지의 다른 모양일 뿐이다.


▲서광 스님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선하고 건강한 의도에 바탕을 둔, 치유적인 계행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건 계를 행하는 순간을 자각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각이 동반되지 않는 계행은 충동적, 반사적, 습관적, 조건 지어진 반응에 불과할 뿐이다. 자각과 알아차림이 함께 하는 의도만이 우리를 보다 나은, 보다 건강하고 성장하는 세계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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