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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계(戒) ②

기자명 법보신문

계는 자신과 타인의 행복·성장위한 것
관습·전통 얽매이면 오히려 병 원인돼

가끔 불교공부를 하다보면 과거 영어공부하던 때가 생각난다. 관계대명사니, 관계형용사니 하면서 실컷 어렵게 공부하고 죽도록 외워서 책 한권을 떼고 나서도 정작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고 얻은 것이라고는 영어에 대한 좌절과 콤플렉스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왜였을까? 그건 영어공부의 궁극적 목적을 망각했기 때문이거나, 영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러는 우리 가운데 계율이 왜 필요한지, 그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계행을 영어공부 하듯이 그렇게 힘들게 억지로 지키는 경우도 있다. 계율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칫 우리 시대의 기본 상식과 교양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규칙들을 붙들고 버리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에 처하는 수가 있다. 이미 유행이 지난 낡은 헌옷가지를 붙잡고 버리기 아까워하지만 결국 입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어떤 계율이 우리 시대의 상식과 교양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행이 지난 낡은 헌옷가지와 같다는 말인가? 남녀차별적 조항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과거 관습과 가치, 문화에만 적용되는 조항들 또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정된 지역, 대상에만 해당하거나, 특정한 계층, 부류, 집단들을 옹호하거나 차별하는 저급한 문화, 가치, 관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에 연기적으로 반연하고 무상(無常)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조항들에 집착하는 특정한 부류들로 하여금 4가지 자아의식(아치, 아만, 아견, 아애)을 불합리하고 불건강하게 채워주고 강화해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치유적 관점에서 보면 계율은 그 자체가 완벽한 치유, 치료수단이다. 왜냐하면 계율은 자애, 연민, 사랑, 용서 등과 같은 고귀한 영적 특질들을 촉진시키고 배양하고자 하는 의도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과 타인의 행복과 성장, 웰빙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율은 자신과 타인의 불행과 불건강을 유발하는 요소들과 행복과 건강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배우고 그것을 일상의 삶에서 훈련하고 알아차리는 행동, 말, 생각을 수술하는 뛰어난 치료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소위 계를 잘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부담스럽고 가까이 대하기 불편한 경우가 있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계행이 무슨 권력을 낳는 수단이라도 되는 듯이 고압적이고 무례하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단지 자신이 남자(비구)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비구니)보다 우월하다는 허망한 생각으로 무지를 살찌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몸으로 금욕하고 생각으로 엄격하다고 해서 계율을 잘 지키는 율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율사는 따뜻하고 공경스러운 말과 특히 어질고, 자애로움과 연민심이 많아야 한다. 계율의 근본 뜻을 알지 못하고 지금·여기에 합당한 시절인연, 즉 사회적 도덕성과 상식, 교양을 무시한 채 관습과 전통만을 강조하게 되면 계율적 금욕은 무리한 억압이 되어 도리어 말과 생각이 거칠어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은 비록 스스로 선택해서 지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계행은 스트레스를 낳고, 그 스트레스는 다시 병이 되어 주변을 힘들고 병들게 하는 병인(病因)으로 작용하게 된다.


계행은 무조건 힘들고 어렵게 지켜지거나 모셔져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렇게 행해지는 계행에는 향기가 없기 때문에 고요함의 향기(定香)와 지혜의 향기(慧香)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계행은 행동, 말, 생각의 수정, 대수술을 통해 가장 극적인 치유적 효과를 기대하는 불교공부의 핵심적 방편이다.

 

▲서광 스님
오직 시절인연에 반연하면서 4가지 치성한 자아의식을 내려놓으려는 올바른 의도와 노력으로 행해지는 계행만이 자신과 이웃에게 신선함, 기쁨, 정화된 마음, 평화로움을 전달한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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