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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 스님 [하]

기자명 법보신문

“‘존재와 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스님 곁엔 항상 책이 있었다.

 

 

어려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후에 인생문제 해결의 길을 책에서 찾았던 서옹 스님은 점차 동서고금의 사상서에도 관심을 가졌고, 출가 이후 ‘임제록’, ‘벽암록’ 등의 내전과 함께 서양철학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스님은 선(禪)을 설명하면서도 늘 현대문명의 발달사를 언급했고, 현대문명의 발달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양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의 글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불교의 가르침과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평소 서양철학서 독서와 관련해 “그냥 잡히는 대로 읽는다”던 스님은 법문을 하면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등의 철학서를 자주 거론했고, 그 내용을 선과 결부해 설명했다. 그 중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존재의 탐구를 시작으로 무의 문제, 부정의 기원과 불성실, 대자존재(의식이 있는 존재)까지 존재의 초현상성을 실존적으로 고찰해 놓은 ‘존재와 무’를 일러 “신 없는 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자유를 추구했으며, 이것은 이른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념비적 대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스님은 19세기 헤겔이나 마르크스 같은 서양철학자들이 유럽의 정신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자만에 빠졌고, 20세기 들어서 하이데거·야스퍼스·사르트르 등의 철학자는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성’ 문제를 깊이 연구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양철학자의 대부분이 물질을 중심에 둔 사고로 일관한 반면, 인간주의적 측면에서 신을 조명한 대표적 철학자로 칸트를 꼽기도 했다. 칸트는 도덕의 실천 입장에서 신이 필요해 신을 내세웠을 뿐, 결코 신의 입장에서 신을 긍정했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스님은 이처럼 서양철학서를 통해 그들의 사고가 어떠한 흐름을 갖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스님의 해박한 서양철학 이해는 스님이 내놓은 ‘참사람 결사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서양문명은 이성적 인간에서 욕망적 인간으로 전락하여 야만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진단한 스님은 현대문명의 병의 근원을 치유해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인간주의를 초월한 ‘참사람주의’라고 확신했다.


오늘날 인류의 위기가 인간의 내면세계를 소홀히 한데서 파생된 문제라고 지적한 스님은 ‘내 수단은 옳았지만 동기와 목적은 잘못되었다’고 말한 멜빌의 소설 ‘백경’에 등장하는 에이하브의 말을 예로 들며,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는 수단은 옳지만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목적을 세우고 가치를 정립하는 정신은 잘못된 것임을 항상 지적했다. 스님의 독서는 이렇듯 언제나 인간 내면의 성찰로 이어졌고, 그 문제를 풀어갈 답이 불교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스님의 상좌이자 지근거리에서 시봉했던 지선 스님은 “스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책이 있었고, 스님이 책을 보는 그 장소는 곧 통찰과 지혜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장소가 됐다”고 회고했다. 서옹 스님의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통찰력과 지혜를 발현시킨 이면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던 셈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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