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학-정(定) ③

기자명 법보신문

지나친 내면 몰입은 외부와의 단절 초래
연기적인 삶 위해 안팎 조화롭게 살펴야

선정수행이 자칫 마음의 내면에 집중되고 몰입되면 마음의 외부 현상과의 단절, 무지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 가운데 더러는 마음수행의 의미를 오해해서 우리 사회와 세상의 일에 무관심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삼매체험에 대한 오해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즉 삼매하면 일단 뭔가 신비적 의식상태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물론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라고 하는 이원적 지각을 바탕으로 평소의 의식과는 달리 주객이 하나 되는 경험은 신비적 심리상태를 유발함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내면세계에 대한 추구와 열정으로 오랫동안 현실세계를 망각하거나 건성으로 대해도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선정수행은 그 방법이 무엇이든 결과적으로는 현실을 보다 정확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서 현실의 삶에 더욱 더 충실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정(定)은 심리치유적 관점에서 볼 때, 불안하고 혼란한 감정과 정서를 자각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서 마음에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직접적 역할을 한다. 그 결과 감정과 정서적 혼란으로 초래되는 주의조절능력과 집중력의 결핍을 방지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사고능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선정수행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세계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능력을 배양하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이나 웰빙, 성공적인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정서·감정 조절능력과 스트레스 관리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선정수행을 닦아왔기 때문에 현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오히려 둔감하고, 또 앞으로 어떤 세상이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예견력이 없다면 그건 무엇 때문인가? 그건 수행방법의 적용, 효과, 또는 목적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타자, 세상, 현상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잘 아는 것이 과연 이치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선(禪) 수행의 과정을 그린 심우도를 주객이 하나가 되는 8단계로 끝내지, 굳이 세상 속으로 돌아가는 9단계와 10단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자아의식은 일상의 인간관계와 현실생활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아의식의 멈춤을 훈련하는 선정수행이 일상에서 이루어진다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때로는 일정기간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고요하고 격리된 공간에서 깊이 집중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만일 너무 오랫동안 마음의 외면(外面)인 현실사회를 등한시한 채 내면에만 집중한다면 심각한 마음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나치게 내면세계만을 장기간 주시하면 되면 자연히 주의를 받지 못하는 현실사회에 대해서는 무지(부주의 맹점, inattentional blindness)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현실사회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변화 맹점, change blindness) 되어 우리가 진정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여기-지금(here and now)에 머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종국에는 현실감각이 결여되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에 조화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선정수행이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연기적 머무름, 연기적 삶의 방식을 깨닫고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가 서로의 거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평등하게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