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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존재론적 사고방식과 공(空)

기자명 법보신문

존재는 존재자가 없으면 무와 다름 없어
존재의 본질은 곧 무의 본질과 같은 차원

이번 회에서는 무엇이 존재론적 사고방식인가를 밝혀야 한다. 이것의 이해가 영가대사의 ‘증도가’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화하는 데에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하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하늘에 구름 잡는 것처럼 몽롱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불교가 공사상을 위주로 하기에 존재론적 사유와 무관한 것처럼 잘못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무엇이 존재인가? 하늘, 땅, 구름, 해, 달, 사람 등등 삼라만상이 있다. 이들 명사적 삼라만상은 그 자체가 존재자이지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존재자는 존재하는 현상 자체는 아니고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와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존재는 무엇인가? 존재는 그 자체 하나의 의미나 개념이 아니므로 대상적으로 물을 수 없다. 존재자들은 다 개념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무엇인가 하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존재는 그런 성질이 아니다. 단지 명백한 것은 존재가 무(無)와 대칭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없다’의 대칭처럼 한 쌍의 기호와 같다는 것 뿐이다. 있음은 없음의 대칭적 기호고, 없음도 있음의 대칭적 기호라는 것이다. 둘 다 내용이 없기에 개념이 아니고 기호일 뿐이다. 그래서 존재와 무는 서로 아무 의미의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서로 상통하지만,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과 서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구름이나 별빛이나 철새들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텅빈 하늘이 있다는 것을 문득 지각한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무슨 존재자(구름/새들)를 머금고 표현했을 때에,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 순간적으로 탈바꿈한다.


삼라만상과 같은 존재자가 없다면, 우리는 존재를 말할 수 없다. 존재는 존재자와 다르지만, 존재자가 없으면 존재와 무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는 존재자의 존재로서 늘 입론된다. 존재자가 있기에 우리가 존재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존재현상은 존재자와 같은 그런 명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는 존재자가 없다면, 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존재(有)는 무와 같다는 승찬대사의 ‘심신명’의 언명(‘有卽是無’ ‘無卽是有’)이 철학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존재와 무를 기호적으로 대치시키지만, 존재의 본질은 곧 무의 본질과 같은 차원이다. 무를 우리가 공이라 부른다면, 공사상은 철학적으로 존재론의 다른 이름이다. 무는 서양신학과 철학에서는 가장 이해가 안된 영역이다. 서양사상에서 무는 허무에 준한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제조)한 절대자이므로, 무는 신의 절대능력을 부정하는 악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이것이 서양신학과 철학의 미흡한 점이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제조자로서의 존재자적인 신을 부정한다. 무는 신의 권능 밖에 있는 허무가 아니라, 무한한 존재자의 존재출현을 안으로 포섭하고 있는 무한한 에너지와 같다. 무와 공은 존재(有)와 존재자를 가능케 하는 근거와 같다. 여기서 근거라는 말에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근거라고 부르면, 또 개념적으로 어떤 하나의 근거라는 ‘것’이 있다 라는 식으로 실체화하고 명사로서 오해한다. 이것은 우리가 불성이 있다라고 하니까, 불성이 실체적 명사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김형효 석좌교수
무와 공은 존재와 존재자의 가능근거이지만, 그 근거가 명사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없는 근거’로서 작용한다. 마음이 있어서 작용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없듯이, 따라서 마음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사고방식을 다 낳는 근거다. 그러나 그 근거는 근거라는 ‘것’이 없는 근거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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