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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혜(慧) ①

기자명 법보신문

지혜는 자비와 함께 대승불교 지향점
자아의식이 멈춘 상태가 지혜의 출발

삼학(三學)의 세 번째 수행인 혜(慧)는 지혜(智慧)의 준말로서 산스크리트어 prajnā를 번역한 말이며 소리나는대로 옮겨 반야(般若)라고도 한다. 알다시피 지혜는 자비와 함께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양 날개 가운데 하나로서 수행의 절대적 영역을 차지한다.


흔히 마음수행에서는 지혜를 지식(知識)과 구분해서 지식을 분별적 앎, 또는 앎음알이로 여기는 반면 지혜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 진정한 앎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식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동시에 지혜의 성취, 또는 깨달음이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지식의 추구를 경시하고 등한시해 왔다. 그 결과 우리가 얼마나 지혜로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식의 결핍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상대적으로 무식해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무식하면서 동시에 지혜로울 수 있는가? 지식과 지혜는 상반된 특성이라서 정말로 지식추구는 지혜를 성취하는데 걸림돌이 되는가?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지식과 앓음알이를 혼동해 왔는지도 모른다. 사전에 의하면 지식은 경험, 교육, 이치를 통해서 얻어지는 사람, 사물, 상황에 대한 이해와 친숙함이라고 되어 있다. 지식은 경험적 기술이나 전문성, 또는 대상에 대한 이론적 이해 둘 다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지식은 우리가 재활용 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이와 같이 지식에 대한 정의를 보면 지식은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임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지식을 “정당화된 진짜 믿음(justified true belief)”이라고 정의했다. 그 믿음이 지나쳐서 집착이 되면 지식의 편리함이나 유용함은 해악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맹신, 지식성취에 대한 아만심은 역으로 무지와 불행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지식을 지혜를 습득하는데 걸림이 되는 장애물로 취급하거나 지식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무시하는 것도 또 다른 극단이 아닌가 싶다.


한편 나는 유감스럽게도 앓음알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전적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앓음알이를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 자아의식이 개입되어 객관적 사실, 현상을 왜곡시키는 작용으로 정의했다. 다시 말해서 앓음알이는 인지·지각과정에 아만·아애·아견·아치의 네 가지 자아의식이 작용함으로서 정보가 왜곡돼 현실 삶에 유용하게 재활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논쟁을 위한 논쟁이고, 이론을 위한 이론일 뿐 실재 삶의 장면에서 유익함을 주기 보다는 갈등과 긴장, 미움 등 불건강한 심리적 상태를 유발하는 것이 앓음알이가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가 삶을 경험하고 체험해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론, 비교, 판단, 분석 등의 인지·지각과정을 통한 이해와 앎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 통찰 등을 통한 직접적인 앎의 방식이다. 전자는 주객 이원론에 기초한 좌반구적, 이론적, 합리적, 분석적, 언어적 지식의 세계고, 후자는 주객의 경계가 사라진 우반구적, 경험적, 직관적 신체감각바탕의 지혜, 깨달음의 세계다. 또 전자는 타인에게 전달이 가능하고 후자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전달이 불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삼학의 세 번째 수행방식인 혜는 후자를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수행을 통해 얻고자하는 주객의 경계가 사라진 우반구적, 직관적 앎의 세계만으로 일상의 삶을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학교교육과 사회생활을 통해서 얻어진 좌반구적, 합리적, 분석적, 추론적 능력도 현실의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서광 스님
유식적 관점에서 보면 우반구적, 직관적, 통찰적 지혜를 얻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의 습득과정에 개입하는 자아의식이다. 자아의식이 멈추어진 상태가 선정의 극치인 동시에 혜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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