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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결사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 집중취재
  • 입력 2011.05.16 13:45
  • 수정 2011.05.19 14:53
  • 댓글 0

지나친 세속화에 대한 반성…사상 첫 종단적 결사

보조 스님 정혜결사는
권력 유착된 승단자정
탈권력·탈정치화 통해
승단 자주·자립화 추구

 

 

▲조계종이 최근 자성과 쇄신을 통한 5대 결사로 구태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하는 불교의 모습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사진은 2007년 10월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봉행한 기념법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우리 불교역사에서 초유(初有)의 사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 불교를 실질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종단차원에서 ‘결사(結社)’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내가 결사에 대하여 최초로 논문을 쓴 것이 1991년의 일이다. ‘정혜결사의 윤리적 성격과 그 실천’(‘한국불교학’ 제16집)이라는 논문이었는데, 핵심은 결사는 윤리적인 차원, 즉 계학(戒學)과 관련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었기에 ‘결사’라는 비상(非常)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배경을 알 수 있는 정보가 ‘고려사절요’ 제12권에 기록되어 있다. 명종 4년(1174)의 일이다. 다소 길지만, 한번 정독해 보기로 하자.


“정월 귀법사(歸法寺) 승려 백여 명이 북문을 침범하여 선유승록(宣諭僧錄) 언선(彦宣)을 죽였다. 이의방(李義方)이 군사 천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승려 수십여 명을 쳐죽이니, 그 나머지는 다 흩어져 가버렸으며, 병졸들 역시 죽고 상한 자가 많았다. 중광사(重光寺), 홍호사(弘護寺), 귀법사, 홍화사(弘化寺) 등 여러 절의 승려 이천여 명이 성의 동문에 집결하므로 문을 닫자, 성밖의 민가를 불태워서 숭인문을 연소시키고 들어와 이의방 형제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의방이 이를 알고 부병(府兵)을 징집하여 쫓아버리고 승려 백여 명을 참살하였는데 부병도 역시 많이 죽었다. 이에 부병을 시켜서 각자 성문을 나누어 지키게 하여 승려의 출입을 금하게 하고, 부병을 보내어 중광사, 홍호사, 귀법사, 용흥사(龍興寺), 묘지사(妙智寺), 복흥사(福興寺) 등을 파괴하니, 이준의(李俊義)가 말했다. 의방이 노하여 ‘만약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일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하고, 드디어 그 절들을 불태우고 재물과 그릇들을 빼앗아 돌아가는데, 승도들이 중간에 기다리고 있다가 마주쳐서 다시 빼앗아 갔으며, 부병들도 역시 많이 죽었다.”


자, 그 당시 세속화된 스님들은 이렇게 살았다. 과연 이것이 부처님 제자들의 모습인가? 불교 승단의 존재양식이 이래도 좋은 것일까? 세속의 권력다툼에 휘말려서, 불살생계를 어겨도 좋은 것일까? 가령 그 배경에 불교교단의 이익과 결부된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승병(僧兵)들의 전투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일까? 문제는 세속 권력과의 유착이었다. 세속권력과 유착되는 카운터파트(counterpart)는 승단 안의 권력자일 것이다. 승단안의 권력화된 모습 역시 행간에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보조지눌(普照知訥, 1153~1210)스님께서 정혜결사의 깃발을 들기 전 8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임인년(1182) 정월, 개경(현, 개성) 보제사(普濟寺)에서는 담선법회(談禪法會)가 열렸다. 이에 참여했던 보조 스님께서는, 어느날 동학(同學) 십여인에게 말하였다.


“담선법회가 끝나면 마땅히 명리(名利)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함께 결사하여, 언제나 선정을 닦고 지혜를 가지런히 함에 힘쓰고, 예불하고 경을 읽으며 노동하고 운력(運力)하는 데 이르기까지 각기 소임(所任)을 나누어서 경영하자. 인연에 따라 성품을 기르며 평생을 놓아지내면서 멀리 달사(達士)와 진인(眞人)의 숭고한 행을 따른다면 어찌 상쾌하지 않겠는가.”(‘정혜결사문’)


이것이 결사이다. 결사의 핵심이 여기에 다 담겨있다. 물론, 뒷날 결사는 여러 가지 변주를 하게 되지만 기본적인 주제는 이것이다. 모든 결사가 제대로 된 결사라고 한다면, 그 저변에는 이 소리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정혜
결사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자성·쇄신 결사의 성패
초심 지속 여부에 달려
성공적인 결사 회향으로
결사 필요 없는 불교되길


보조 스님의 이 말씀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자”는 데 있다. 나머지 부분은 그런 뒤, 산림에서 어떻게 살아가자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말일 뿐이다. 하지만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자”는 말은 바로 결사가 무엇인가 하는 본질과 관련된 명언(明言)이다.


명리는 명예와 이양(利養)의 줄임말이다. 명예와 이양, 우리가 마주해야 할 적(賊)들의 이름이다. 이 중에서 이양은 물질적인 이익, 명예는 정신적인 이익을 가리킨다. 앞에서 우리는 결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 세속권력과의 유착이며 교단 안의 권력화라는 점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거기서 말하는 그 권력에 대한 욕망은 명예와 이양 중 어디에 연관되는 것일까? 바로 명예이다. 명예욕은 오욕락 중의 하나이지만, 이는 바로 권력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제 문제는 권력욕이다. 권력과의 유착이다.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자”는 외침은, 개경을 중심으로 하는 승단의 주류가 권력화되고 세속화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떠나자는 것이다. 이 혼돈과 타락의 중앙교단, 세속과 유착되고 권력의 길에 골몰하고 있는 주류의 승단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산림에 은둔하자”고 말했다.


“산림에 은둔하는” 삶을 살았던 “달사와 진인의 숭고한 행”이야말로 결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였다. 중심은 썩어가더라도, 다른 한 구석(一隅)에서는 새로운 싹을 틔우자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게 보조지눌 스님께서 실천하였던 정혜결사의 본래적 모습은 탈권력(脫權力), 탈정치(脫政治)에 있었다.


따라서 나는 ‘과연 그것이 권력과 거리를 두고 있느냐,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느냐?’ 하는 점을, 어떤 운동이 결사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나 정치라는 개념에는 세속권력과 교단권력 모두를 포함한다. 세속권력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것이고, 교단권력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결사이다.


그렇기에 어떤 운동을 결사냐 결사가 아니냐 하는 점을 판가름할 때, 그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스스로 ‘우리는 결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필요조건이라 보지 않는다. 스스로 결사임을 말하고 있을지라도, 그 운동에서, 그 운동을 통하여 권력(세속권력과 교단권력)으로부터 자주(自主) 자립(自立)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없다고 한다면, 결사라 자리매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비록 스스로 결사임을 표방한 일이 없다 하더라도 권력으로부터 자주 자립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운동은 결사라 평가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조계종에서 벌이고 있는 ‘자성과 쇄신의 결사’는 일단 ‘결사’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결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출발 자체만으로도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세속권력으로부터 불교가 존중받고, 자주적인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속권력과 유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자성과 쇄신”을 말할 때,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대불교사에서 반복적으로 보여 온 세속권력과의 근거리(近距離)를 스스로 자성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초심(初心)이 지속될 수 있을까?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여일(如一)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조계종 차원의 ‘자성과 쇄신의 결사’는 시험대 위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로 ‘자성과 쇄신의 결사’는 또 다른 맥락에서 내게 충격을 주었다. 바로 종단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보조 스님의 예에서 보듯이, 결사는 교단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한 구석 비추기(照于一隅)’로서 시작되었다. 이를 나는 재야차원이라 해서, 결사가 성립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본다. 어디까지를 재야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본사 차원 이상은 재야라 볼 수 없다는 기준을 나는 설정하였다.


물론 본사 차원에서도 결사를 할 수 있다. 그런 사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본사주지 스님 정도의 소임자라면, 그러한 일은 당연한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앞장서서 ‘결사’를 주창하였다는 것은 적지 않은 놀라움이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아, 그렇다. ‘자성과 쇄신의 결사’가 성공한다면, 조계종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그것은 마침내 ‘결사의 무용(無用)’으로 이어지게 되리라. 결사가 필요 없는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나는 훗날 역사가들이 자승(慈乘) 스님이 이끄시는 ‘자성과 쇄신의 결사’를 어떻게 평가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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