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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혜(慧) ②

기자명 법보신문

지식과 지혜는 상호의존적 공생 관계
사고 치우침 없어야 연기적 삶도 가능

지난 호에서 우리가 대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는 추론, 비교, 판단 등을 통한 좌반구적 앎의 방식과 직관, 통찰 등을 통한 직접적, 우반구적인 앎의 방식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아초월심리학자인 윌리암 브로드(William Broad)가 말했듯이 앎은 이와 같은 두 가지 방식 외에도 사랑, 자비, 공감적 공명, 감정이입 등을 통해 그리고 알지 못함을 통해 아는 앎의 세계가 있다. 특히 대승불교는 자비실천을 통한 앎을 강조하고 선(禪)은 알지 못함을 통해서 아는 세 번째 앎의 방식을 강조한다.


가끔 마음수행을 하는 우리들 가운데는 위의 세 가지 앎의 방식에 대한 이해부족 또는 개인적 욕구에 의해서 어느 한 가지 앎의 방식에 치우치거나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의미의 지혜는 성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인적 인간, 지성과 인격적인 삶을 위해서는 이들의 상호작용, 통합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신구의 삼업을 올바르게 닦고,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들 방식이 골고루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더러는 마음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조차도 지식과 앓음알이를 혼동한 나머지 첫 번째 앎의 방식을 배척한다. 또 어떤 스승들은 두 번째 앎의 방식에 골몰한 나머지 세 번째 앎의 방식 자체를 망각해 버린다. 그 결과 제자들의 교육과 성장에 심각한 비효율성, 비현실성을 가져온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것은 자신의 앓음알이를 지식이나 지혜, 심지어는 자비와 혼동하고 착각하는 스승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습득에 네 가지 자아의식을 동원시킴으로서 경험을 아집으로 왜곡시키고 뒤틀리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은 이 세 가지 앎의 방식에 익숙해 있어야 하며,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서 이들 앎의 방식이 충분히 실천되고 체험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자들의 특성과 잠재력을 고려하여 상황과 조건에 맞게 그때그때 필요하고 적절한 방식들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적용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적 관점에서 보면 굳이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뿐 아니라 누구든지 위의 세 가지 앎의 방식을 골고루 조화롭게 훈련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인격적 결핍, 지혜의 한계, 깨달음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이 가진 보다 고귀하고 높은 정신적 특질에는 도달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앎의 방식은 곧 자신의 존재방식이 되고, 그것은 다시 행동반응 양식을 결정짓는 동기가 되므로 오직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게 돼 다르게 아는 방식, 다르게 존재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이들을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 반목, 미움을 키우게 된다.


마음을 공부를 하는 우리들이 고려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세 종류의 앎의 방식 간에는 우열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찍이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건 상대적 가치다. 지식추구에 치우친 이들에게는 지혜추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지혜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에게는 지식추구가 필요하다. 자비실천을 통한 앎이나 알지 못함을 통한 앎의 방식에 집착한 이들에게는 앞의 두 가지 방식이 필요하다. 이들은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상호의존적 관계고 공생의 관계다. 치우침은 반드시 앎의 한계, 존재의 불안, 불건강하고 조화롭지 못한 행동을 유발하고, 그것은 다시 인간관계의 긴장과 갈등, 고통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세 종류의 앎의 방식은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거나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들 앎의 방식이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절하게 작용하면서 조화와 통합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연기적 삶의 실천을 구현할 수 있다. 이들의 부조화나 치우침에 의한 자비나 사랑의 실천은 그만큼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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