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퇴임이 학문퇴임 아니다

  • 교학
  • 입력 2011.06.13 17:18
  • 수정 2014.09.16 14:18
  • 댓글 0

학문 열정 불사르는 원로 불교학자들

고령화 시대. 60세를 장수로 여기던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다. 정년퇴임 등 일선에서 물러나고도 자신의 전공을 계속 살리거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사례들이 크게 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괴테의 ‘파우스트’, 톨스토이의 ‘부활’ 등이 70대 이후에 완성된 역작들이며, 한국불교사에서도 일연 스님이 70대 후반에 시작해 84세로 입적할 때까지 집필에 전념해 ‘삼국유사’를 남겼다. 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도 유명한 ‘직지심체요절’도 백운 경한 스님이 75세 때 쓴 저술이다.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生也有涯 知也無涯)’는 장자의 말처럼 무한한 지적탐구와 열정이 뜻 깊은 결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의 정년퇴임은 보통 만 65세다. 정년퇴임 후 학문 활동을 접는 학자들도 많지만 열정적인 학문 활동을 지속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그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77세 원로학자의 86번째 중국 도전 

▲ 변인석 명예교수
 

변인석(77) 아주대 명예교수도 노년임에도 향학열을 불사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신라․고려시대 구법승(求法僧) 연구의 권위자로, ‘중국문화유적답사’(1996) ‘당 장안의 신라사적’(2000) ‘정중 무상대사’(2009) 등 저술과 관련 논문들은 이 분야 연구의 필독서로 꼽힌다. 일반적인 문헌 연구의 차원을 넘어 중국 현지를 일일이 답사하면서 집필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경제사를 전공한 변 교수가 구법승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오랫동안 당나라 역사 연구에 매진하던 변 교수는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선 불교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불교 역사와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미 오래 전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국 스님들의 발자취가 적지 않음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옛날 진리의 등불을 밝히려 머나 먼 타국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스님들. 용케 거센 바다를 건넜더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 맹수와 도적,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내야 했던 당시 구도의 길은 오늘날 상상조차 어려운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닿았다.

변 교수는 그런 구법승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부터였다. 옛 문헌을 뒤지고 관련 자료들을 모았다. 1988년, 마침내 그는 구법승 연구를 위해 중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답사가 지금까지 무려 85번. 변 교수는 문헌에 기록된 사찰들을 찾아가 그들의 흔적을 더듬었다. 신라 왕자 무상 스님이 500나한의 반열에 들어갔음을 확인했을 때의 감회, ‘육조단경’을 편찬한 하택신회 선사의 제자인 혜각 스님의 비문을 처음 대했을 희열 등등. 문헌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이 현장에서 속속 발견할 수 있었다.

종양에도 학문 매진 “구법승 연구 마무리 삶의 목표”

보람이 컸던 만큼 힘든 점도 적지 않았다. 기록에는 분명 남아있는데 이 잡듯 그 지역을 찾아 헤매도 흔적조차 없는 곳들도 많았다. 이미 오래 전에 폐사가 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변 교수의 체력도 문제였다. 사찰이 주로 산에 있다보니 강행군을 해야 할 때가 많았고 건강도 급속히 악화되곤 했다. 특히 지난 2005년 중국답사 때 독감에 걸려 1년여 동안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건장했던 몸도 53kg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조금씩 거동이 가능해지자 변 교수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할 사찰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할 때 필생의 과제인 구법승 연구 저술도 마무리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변 교수. 올해 초 방광에 종양이 생겨 오는 7월 수술을 해야 하지만 6월13일 그는 중국을 향한 86번째의 도전에 나섰다. 선종사서의 원류격인 ‘조당집’을 편찬한 신라 스님이 머물던 사찰을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신념에서다. “구법승의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학문의 길을 간다”는 변 교수. 어떤 젊은 학자들보다 학문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지닌 그는 후학들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 김영태 명예교수
 

‘삼국유사’ 최고 권위자 김영태(80) 동국대 명예교수는 퇴임 전 50여년 동안 250여편의 논문과 40여편의 책을 썼던 김 교수는 지금도 무섭도록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필생의 작업으로 ‘삼국유사’ 역주작업을 시작한 그는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본책 8권에 별책 3권의 방대한 계획을 세워 이를 진행하고 있다. “이 문헌 찾고 저 참고서 훑어보며 눈병이 나도록 살폈다”는 그의 말처럼 낮에는 자료를 찾거나 검토하고, 밤 12시부터 새벽 3~4시까지 매일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9년 말 ‘자세히 살펴본 삼국유사1’(도피안사 간)을 펴냈으며, 이미 집필을 마친 2권도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집중력․판단력․탐구력은 노년에 더 왕성” 

▲인권환 명예교수
 

불교문학을 전공한 인권환(75)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3년 퇴임 이후 연구했던 성과들을 엮어 최근 ‘한국문학의 불교적 탐구’(월인 간)를 펴냈다. 퇴임 후 동아시아 관음설화 비교 연구를 본격화 하고 그는 이를 위해 일본과 중국에서 700~800권의 관련 서적을 모아 이를 토대로 연구 중이다. 또 환갑이 넘어 일본어 회화를 공부를 시작한 인 교수는 이제 일본어로 강의할 정도로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갖췄으며, 최근에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인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쇠잔해지고 건망증도 생겼지만 집중력, 판단력, 탐구력은 오히려 예전보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며 사람에게 일이 없다면 그 삶은 곧 죽은 것”이라며 “우리네 학자들에게는 찾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관적인 작업이 곧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김형효 명예교수
 

김형효(72)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불교사상의 현대적 조명과 한국철학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퇴임 전 이미 20여권의 저술을 펴낸 김 교수는 퇴임 후에도 ‘마음혁명’ ‘구조주의’ ‘원효의 대승철학’ 등 꾸준히 책을 펴내고 있다. 퇴임 후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지난해 백내장 수술로 시력이 다소 좋아졌지만 지금도 커다란 돋보기 없이는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여전히 많은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젊은 시절에 책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색의 힘이 깊어지기 때문에 노년의 학문이 훨씬 창의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단 떠난 후에도 굵직한 연구 성과 속속 출간 

▲권기종 명예교수
 

권기종(72) 동국대 명예교수는 원각불교사상연구원의 원장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태종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다양한 저술작업을 직접 기획․주도하는 것은 물론 1년에 4~5차례 되는 크고 작은 학술대회도 이끌고 있다. 지난 6월4일 천태불교학술대회에서 ‘미타염불과 관음염불의 동이점’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권 교수는 매년 학술대회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직접 작성해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금강경’과 ‘유마경’ 해설서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권 교수는 “학문의 세계는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다”며 “힘닿는 데까지 불교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명대 명예교수
 

문명대(72) 동국대 명예교수도 매년 1~2권의 저술을 펴낼 정도로 누구보다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한국미술사연구소장이기도 한 그는 고희를 넘긴 학자로는 드물게 한국연구재단에서 공모한 3년간의 기초연구연구지원사업에 선정돼 현재 10여명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을 이끌고 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소를 지키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문 교수는 “연구해야 할 새로운 자료들이 무궁무진하고 갈수록 공부할 내용도 많다”며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 최병헌 명예교수
 

지난 40여년간 불교사 연구의 외길을 걷고 있는 최병헌(69) 서울대 명예교수는 폭넓은 불교사 이해로 유명하다. ‘사료 해석의 엄격함’과 ‘논리적인 체계성’을 중시하는 최 교수는 한국불교사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저술들을 준비 중이며, 지금도 학술세미나에 참여해 후학들의 글을 논평하거나 직접 발표에 참여하기도 한다. 최 교수는 “요즘 많은 학자들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더 이상 발전이 없거나 50대 이미 학문활동이 멈추는 조로현상이 심각하다”며 “새로운 앎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창조성을 잃어버리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더 이상 학자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학자 여부는 나이 아닌 열정과 창조성
 

 

▲ 김성구 명예교수
 

김성구(67)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물리학자다. 그러나 59세 때 불교학의 길을 새롭게 선택해 대학과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그는 현재 물리학과 불교의 접목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펴낸 ‘천태사상으로 풀이한 현대과학’은 기존 이 분야의 책들이 물리학적 관점에서 불교를 해석했던 것과는 달리 불교적인 관점에서 물리학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큰 관심을 모았다. 김 교수는 “젊었을 때는 논문을 쓰는데 시간에 쫓기고 압박감도 컸지만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행복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마무리 되는 3년 뒤엔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 다시 불교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년에도 학문의 열정을 불사르는 많은 학자들. 그들은 대학에서의 퇴임이 학문의 퇴임이 아님을 삶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