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공, 한암이 쓴 경허행장 고의로 뺐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1.06.16 15:46
  • 수정 2011.06.17 20:05
  • 댓글 2

평창 월정사․한암문도회 학술회의

만공, 한암에게 행장 부탁
한암은 경허 법화 배워도
행동은 따르지 말 것 명시
마음에 안 들자 문집서 빼
‘경허집’ 오류투성 지적도

 

 

▲ 경허 스님, 만공 스님, 한암 스님

 

 

1930년 겨울 만공 스님은 오대산 한암 스님에게 서찰을 보내 경허선사의 행장을 써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에 한암 스님은 직접 스승의 행장을 찬술하고 법어와 시 등을 엮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만공 스님은 한암편집본을 끝내 출간하지 않았고 1943년 만해 스님에게 다시 편찬을 부탁해 선학원에서 ‘경허집’을 펴냈다. 만공 스님은 한암 스님이 편찬한 ‘경허집’을 출간하지 않고 왜 만해 스님에게 다시 부탁했던 걸까?

 

평창 월정사와 한암문도회가 6월15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경허선사와 한암선사’란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선 경허 스님과 한암 스님의 관계를 비롯해 ‘경허집’ 편찬 배경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뤄졌다.

 

‘경허집’의 편찬과 간행 경위에 대해 발표한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한암 필사본이 선학원본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은 한암 스님이 쓴 경허 행장 내용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한암 스님이 행장으론 이례적으로 경전과 옛 고승의 말을 인용해 후인들이 경허 스님의 법화(法化)는 배워도 막행막식의 행리(行履․행동)은 무턱대고 따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허집’을 발간하려 했던 만공 스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장 부분을 고쳐달라고 한암 스님에게 부탁했으나 강직한 성품인 한암 스님이 이를 단호히 거절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도 그와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 김 교수는 한암 스님의 손상좌인 보경(희태) 스님이 직접 경험했던 증언을 토대로 “1943년 만공 스님이 한암 스님을 찾아왔고 그때 두 스님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암 스님이 집필한 경허행장은 경허 스님의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한암 스님이 1932년 ‘불교’ 5월호에 행장 전문을 수록한 것에서도 그 의도가 분명히 읽혀진다”고 덧붙였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경허 스님은 주색(酒色)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선승이었다면 한암 스님은 계정혜와 인격을 겸비한 조주나 백장선사 같은 전형적인 선승이었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또 “경허행장에는 한암 스님이 경허 스님의 높은 안목에 가치를 부여하면서도 교단을 생각하는 한암 스님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며 “경허 스님은 도덕주의적․역사주의적 인식이 부족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에도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동국대 강사 자현 스님도 ‘경허 스님이 걷기 힘들어하는 만공 스님을 위해 우물가에서 물 긷던 아낙과 입을 맞추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뒤 “조선이라는 유교적 사회 속에서 그 아낙은 그 일로 목을 매었을 수도 있었다”며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일생이 망가져도 무방하다는 판단은 수행자를 떠나 일반인의 군상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경허 스님 행적은 지난 100여년 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편에선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해 격외의 대선사로 찬탄되는가 하면 1910년대 이능화가 ‘조선불교통사’에서 경허 스님의 언행을 ‘마설(魔說)’로 명시한 것을 시작으로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호성 동국대 교수는 “오늘날 경허 스님의 행리를 다 따르는 것은 불가하지만 한암 스님의 행리를 다 따르는 것은 가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월정사가 6월15일 ‘경허선사와 한암선사’를 주제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개최한 학술회의.

 

한편 이날 학술회의에선 경허스님 연구의 중요 자료로 간주되는 1981년 수덕사판 ‘경허법어’가 오역이 대단히 심각하고 고증조차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지금까지 간행되거나 영인된 ‘경허집’을 모두 대조․교감해 연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본 ‘경허집’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